공수처가 한 차례 조사도 없이 청구했던 손준성 검사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법조인들은 27일 “공수처가 여당 눈높이에 맞추다가 망신을 자초했다”고 했다. 민주당 유력 인사들이 공개 주문한 대로 공수처 수사가 이뤄졌다는 ‘공수처와 여권 교감설’도 제기됐다. ‘손 검사 방어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수세에 몰린 공수처가 그간의 수사 진행 상황을 공개했는데, 그걸 보면 여권 인사들의 이 사건 관련 발언이 있을 때마다 공수처 수사도 유사한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27일 “(공수처가) 여당 대표 지령대로 수사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공수처 내부에서도 “사건 수사를 여당에서 지휘하는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지난 20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 라디오에서 “녹취록이 나왔는데 (피의자를) 소환 못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했다.
다음 날인 21일 송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 결정하는 데 판단할 수 있도록 수사가 신속하게 종결돼야 한다” “일단 공수처가 빨리 김웅 의원과 손준성 검사를 소환해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공수처 검사는 손 검사 측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대선 경선 일정’과 ‘강제 수사’를 언급하며 출석을 압박했다.
송 대표는 또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대선이 본격적으로 되기 전에 빨리 결론을 내줘야지, 선거 국면에 들어가면 더 정치적 논란이 될 것 아니겠느냐” “왜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을 빨리빨리 소환해서 수사하지 않느냐”고 했다. 공수처는 22일에서 다음 날로 넘어가는 자정 직후 법원에 손 검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손 검사 구속영장은 26일 기각됐다.
송 대표 발언과 공수처의 수사 진행 상황이 묘하게 겹치는 일이 반복되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여권과 공수처가 수사 상황을 공유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날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성명을 내고 “(공수처 수사가) 야당 경선에 개입하려는 정치 공작에 불과했음이 증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내부에서조차 “수사가 여당이 가리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수처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고발 사주’ 사건과 관련해 여당 법사위원들이 수시로 공수처 지휘부와 교감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한데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며 “이번 손준성 영장도 일부 검사가 반대했으나 그대로 밀어붙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고발 사주’ 의혹 수사의 주임 검사를 맡은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평소 친분이 있는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최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