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24일 발표한 ‘2022년 신년 특별사면 및 복권자’ 명단에는 한명숙 전 총리와 노동계·시민단체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이들 대부분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거나 불법 집회와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끼워 넣어 물타기한 ‘보은(報恩) 사면’”이라며 “5년 내내 이뤄진 ‘내 식구 챙기기’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친노 진영의 ‘대모’로 불리는 한 전 총리의 경우, 현 정부 출범 때부터 복권(復權) 대상으로 거론돼 왔다. 복권되면 선거에도 출마할 수 있는 등 정치 활동에 제약이 없어지게 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8월 한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추징금 9억원을 선고받자 “한 전 총리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이후 한 전 총리는 2017년 8월 만기 출소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12월 29일 취임 후 첫 특별사면에서 한 전 총리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뇌물·알선수재 등 5대 중대 부패범죄와 반(反)시장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 등에 대해선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공약했었다. 한 전 총리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이었지만 어찌 됐든 돈이 얽혔기 때문에 청와대는 한 전 총리를 복권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정치인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던 정봉주 전 의원이 복권된 게 유일했다.
이후 2019년 12월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복권됐는데 그의 혐의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였다. 이를 통해 이 전 지사는 이듬해 2020년 총선에서 당선돼 정치권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때도 한 전 총리는 제외됐지만 이후 검찰 차원에서 ‘명예 회복’ 시도가 있었다. 친여 매체가 제기한 ‘한명숙 수사팀의 재소자 위증 교사’ 의혹에 대해 친정권 검사들이 ‘한명숙 수사팀’ 검사를 ‘위증 교사’로 기소하려다가 조남관 전 대검 차장과 전국 고검장들에게 가로막혔다.
이날 법무부 사면 발표를 접한 법조인들은 “집권 말을 맞은 문 대통령이 결국 자신 손으로 한 전 총리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말이 나왔다. 이날 복권된 다른 정치인으로는 여권에서 우제창·최민희 전 의원, 야권에선 최명길·박찬우·이재균 전 의원 등이 있었다. 기계적 균형을 맞췄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이번 사면에서도 시위사범으로 처벌된 노동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기존의 패턴이 반복됐다. 법조인들은 “정권 출범에 기여한 데 대한 끊임없는 보은이자 ‘진영 챙기기’”라고 비판했다. 대표적 인사가 이영주 전 민노총 사무총장, 송경동씨 등이다.
이 전 사무총장은 2015년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과 함께 이른바 ‘민중 총궐기’ 집회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그 시위로 경찰관 75명이 다치고 경찰 버스 43대가 부서졌다. 2심 재판부는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우리 사회에서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송경동씨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 ‘크레인 고공 농성’을 지지하기 위해 ‘희망버스’ 시위를 기획했다. 그는 희망버스 시위 때 경찰 해산 명령에 불응하거나 도로를 점거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을 포함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 ‘사드 배치 반대 집회’ 등 이른바 ‘사회적 갈등 사건’으로 분류된 8개 사건 관련자 65명이 이번에 사면·복권됐다. 앞서 2017년 12월, 2019년 2월과 12월, 2020년 12월 사면까지 포함하면 문 정부가 지금까지 구제한 불법 시위사범은 총 241명에 이른다. 이영주 전 민노총 사무총장과 함께 ‘민중 총궐기’를 주도했던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은 2019년 12월 사면됐다. 그 당시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지지층 결집용’ 사면”이란 분석이 나왔다. 한 법조인은 “이번 사면 역시 대선 직전 여권 결집을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며 “특히 불법 폭력시위 사범은 사회 법질서를 준수해야 한다는 국민 인식을 흐린다는 점 때문에 법치 선진국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