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同性) 결혼의 상대방을 사실혼 배우자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건강보험 피부양자로는 받아줘야 한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민 건강을 위해 ‘동성 결합’에도 피부양자 제도가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행정 1-3부(재판장 이승한)는 21일 소성욱(32)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피부양자 등록 취소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남성인 소씨는 다른 남성인 김용민(33)씨와 2017년부터 동거하다 2019년 결혼식을 올렸다. 건보공단은 2020년 김씨의 신청에 따라 소씨를 사실혼 배우자로 보고 피부양자 등록을 해줬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공단은 ‘착오’라며 등록을 취소했고, 이에 소씨는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작년 1월 소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성(異性) 간 사실혼 배우자만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이날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은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다를 뿐 동일한 정도로 밀접한 생활 공동체 관계”라며 “동성 결합에만 피부양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법은 이날 판결에서 “(모두 남성인) 소씨와 김씨 사이에 사실혼 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법, 민법과 대법원·헌법재판소 판례가 모두 사실혼을 남녀 간 결합으로 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사실혼은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배우자 간에 동거·부양·정조 의무가 있고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 보상 등도 적용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은 소씨와 김씨의 관계를 이성(異性) 간 사실혼과 구분해 ‘동성(同性) 결합’이라고 불렀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반려자로 생활하기로 합의하고 사회적으로 선언하는 의식도 치렀으며 상당 기간 생활공동체로 협조와 부양 책임을 졌다”면서 “혼인 관계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서울고법은 이어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에서 동성 결합을 이성 간 사실혼과 달리 취급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건보 가입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해 건강보험 수급권을 인정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며 “가입자와 실질적으로 혼인으로 볼 수 있는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 공동체 관계에 있고 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지하고 있으면서 소득·자산이 일정 기준 이하인 사람이면 피부양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은 본질적으로 동질하기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서울고법은 또 건보공단이 동성 결합 상대방을 차별하면서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단이 소씨의 피부양자 등록을 취소한 처분은 평등 원칙에 위배돼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해 왔다”면서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도 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앞으로 건강보험 이외 사회보장이나 세금 분야에서 비슷한 소송이 제기되고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