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철원

비슷한 범죄라도 판사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차이가 나는 ‘들쭉날쭉 판결’은 형사재판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 왔다. 대법원이 주요 범죄에 대해 ‘양형(量刑)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지만 ‘고무줄 판결’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양형 기준이 판사들에게 법적 구속력이 없고 기준을 벗어난 형량을 선고하더라도 판결문에서 이유만 밝히면 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AI 판사’에게 형량 결정을 맡겨보자는 논의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간 판사’ 개인의 성향과 편견, 감정 상태 등이 형량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를 AI 판사가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도 26일 ‘AI와 양형’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오세용 인천지법 부장판사와 박혜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주제 발표자로 나섰다.

오 부장판사는 “사법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양형 분야라고 생각한다”면서 “양형 기준을 만들기 위한 대량의 데이터 학습과 통계적 추론이 필요한데 (인공지능 기술인) 머신러닝 등을 통해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형량 결정을 위한) 자료를 생성할 수 있다”고 했다.

오 부장판사는 양형 과정에서 ‘인간 판사의 보조 수단으로 AI를 이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형량 결정에 AI를 활용하면 형량 편차가 줄어들어 재판에 대한 불복 비율이 떨어질 것”이라며 “예측 가능하면서 공정한 재판이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박혜진 교수는 “AI의 정보 추출 기술, 재범 위험 예측 기술, 감성 분석 기술을 형량 결정에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미국 50주(州) 가운데 28주가 AI를 재범 위험 예측 도구로 도입했다고 전했다. 위스콘신주에서는 AI 기술을 적용한 ‘컴퍼스(COMPAS)’의 판단에 따라 피고인에게 ‘징역 6년’ 선고와 함께 ‘수감 중 가석방 금지’를 결정한 판결이 나왔다. 이에 대해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컴퍼스를 양형에 참작하는 것은 적법하고 법원의 형량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박 교수는 형량 결정의 핵심 요소인 재범 위험을 판단할 때 AI를 활용하는 이유에 대해 “AI는 인간 판사와 달리 같은 입력값에 대해 같은 결과값을 내기 때문에, AI로 양형을 한다면 유사한 사건에 대해 (모든 법원이) 일관된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고려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하지만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법조인들은 ‘AI 판사’ ‘AI 양형’ 전면 도입에 대해선 신중론을 폈다. 오세용 부장판사는 “가치 판단이 개입될 필요가 없는 기계적 분야에는 AI가 쓰일 수 있지만, 법적 추론과 논증을 통해 판결문을 작성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날 심포지엄 토론자로 나온 이종원 서울중앙지검 검사도 “법관은 피고인의 태도, 증인의 비(非)언어적 행위 등을 종합해 형을 선고하는데 이런 요소들은 문서화하기 어렵고 소송 기록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AI가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학습해 판단 구조를 형성하는데 이 데이터가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면 AI가 편견을 답습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리걸테크 기업인 엘박스 이진 대표도 “AI가 전면적으로 인간 법관을 대체한다면 사람의 통제를 거치지 않는 판결이 나오면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게 된다”면서 “AI가 도입되더라도 기존 판례가 편향·왜곡된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개선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이원상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AI가 인간의 영역인 판단력, 재량 등을 대체하기 힘들기 때문에 형량 결정에 AI를 활용할 때 이런 한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면서 “AI가 내린 형량 판단을 시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도록 만들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