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이란 중형을 이례적으로 선고해 논란이 된 박병곤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판사 재직 때도 ‘친야(親野)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사실이 14일 추가로 드러났다.

그동안은 박 판사가 고교·대학 시절 쓴 비슷한 성향의 글들과 이후 소셜미디어 활동들이 공개돼 있었다. 박 판사가 판사 시절 쓴 글들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법조인들은 재차 “박 판사 글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이번 ‘정진석 판결’은 판사의 정치 성향이 판결에 반영되는 것을 어느 정도 용인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문제를 환기시켜 준다”고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박 판사는 2022년 3월 15일 페이스북에 ‘이틀 정도 소주 한잔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라는 글을 썼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한 지 6일 뒤였다.

박 판사는 또 2021년 4월 9일 중국 드라마 ‘삼국지’ 장면을 캡쳐한 사진을 30장 정도 올렸다.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진 이틀 뒤였다.

박 판사는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자녀 입시비리가 불거진 2019년 10월 10일에는 언론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누가 먼저 돌로 치랴’ ‘권력 측 발표 그대로 사실화’ ‘약자에게만 강한 건 깡패’ 등의 내용으로 조 전 장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기자들을 비판했다. 고(故) 리영희 교수가 1971년 당시 언론을 비판한 글을 차용했다.

박 판사는 또 2018년 1월 25일 ‘분노하라’는 문구와 함께 주먹 쥔 삽화 사진을 페북에 올렸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진보 성향 판사들에 대한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작성됐고 부당한 재판 개입이 이뤄졌다면서 대국민 사과를 한 다음 날이었다.

박 판사는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에 배치된 직후 이 페북글들을 삭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채널A는 그 내용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과거 박 판사가 썼다가 지운 글이 맞는다”고 밝혔다. 중앙지법은 “박 판사가 정진석 의원 판결을 염두에 두고 삭제한 것은 아니고, 중앙지법 판사로 부임해 형사단독을 맡은 지난 3월쯤에 소셜미디어의 글들을 삭제했고 문제된 글들은 그중 일부”라고 했다.

앞서 중앙지법은 박 판사가 고교·대학 시절 쓴 글에 대해 “특정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일부 내용을 토대로 법관의 사회적 인식이나 가치관을 평가할 수 없다”며 박 판사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 박 판사의 해당 글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비판하고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박 판사가 판사 재직 때 쓴 ‘정치 성향’ 글이 추가로 공개되자, 중앙지법은 “기존 글과는 맥락이 다른 것 같다. SNS의 (정치적) 사용이라는 추가 쟁점이 생긴 만큼 다시 검토해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판사 재임 때 박 판사의 글들이 법관윤리강령 위반이 문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강령의 7조는 법관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정하고 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2012년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 때 자기 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법조인들은 “판사도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이번 사안은 공직자윤리위 권고를 넘어서는 문제”라며 “법관의 정치 성향에 판결이 좌우되는 현상을 차단하는 것이 사법부 과제로 떠올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