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월 24일 임기가 끝나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임으로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22일 지명했다. 사진은 이 후보자가 대전고등법원장이던 작년 4월 ‘법의 날’을 앞두고 언론과 인터뷰하는 모습./중도일보

윤석열 대통령은 9월 24일 임기(6년)가 끝나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후임에 이균용(61·사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22일 지명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법원장 후보자 인선 브리핑에서 “이 부장판사는 32년간 오로지 재판과 연구에만 매진해온 정통 법관”이라며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 사법부를 이끌어나갈 적임자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균용 후보자를 잘 아는 한 법조인은 이날 “이 후보자가 그동안 한 말, 쓴 글을 보면 앞으로 그가 법원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김명수 체제’에서 법원장을 지냈지만 김 대법원장을 정면으로 비판해 왔다.

그는 2021년 2월 대전고등법원장 취임사에서 “법원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사법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면서 “재판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져 내려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했다. 당시는 민주당이 임성근 전 부장판사를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에 넘긴 상황에서, 김 대법원장이 그의 사표 수리를 두고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난 때였다. 이 후보자는 “정치가 법치를 집어삼키는 ‘사법의 정치화’가 논란이 되는 시점”이라며 “국민 정서를 내세워 편향된 주장을 실정법에 우선하려는 위험한 여론 몰이가 사회를 뒤흔들고 법원을 위협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후보자는 대장동 일당과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권순일 전 대법관과 관련, “국민이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법관은 실제로 공정해야 하고 또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균용 후보자

이 후보자는 작년 4월 중도일보와 인터뷰에서는 “사람에 따라 판결이 달라져서는 안 되고 어떤 법관이 맡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어야 신뢰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대법원장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의 부작용도 지적했다. “법원이 승진 제도를 통해 (신속한 판결로) 분쟁 해결과 권익 보호 역할을 명백하게 수행하던 때가 있었는데 승진 제도가 없어지면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재판에 몰입하는 판사들에게 유인책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 작년 12월 대전지방변호사회에 기고한 글에서 이 후보자는 “최고 법원이 정치적으로 부과된 지배적 정서에 조응하게 되면 법원 조직은 폭주하는 여론의 압력에 굴복하게 되고 광기가 질주하더라도 제동을 걸지 못하게 된다”며 “법관은 특정한 정치적, 가치적 입장에 지나치게 관련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이 후보자는 경남 함안 출신으로 부산 중앙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사법시험 26회(사법연수원 16기)에 합격한 뒤 1990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방법원장, 대전고등법원장 등을 거쳐 지난 2월부터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엘리트 판사 모임으로 불리는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며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일본 게이오대학 교육 파견을 두 차례씩 경험해 국내외 법률 실무와 이론에 모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23일 오전 김명수 대법원장과 면담하고, 취재진도 만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지난 6년간 ‘문재인 정권 편들기’ ‘포퓰리즘 인사’ ‘판결 지체’ 등으로 무너뜨린 사법부를 이 후보자가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도“이 후보자가 ‘법원이 재판은 참 잘한다’ ‘판사들이 헌신적으로 일한다’ ‘사법부를 믿을 만하다’는 국민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법원의 정치화 멈춰야”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 이후 ‘양승태 법원’의 엘리트 법관들을 ‘적폐’로 몰았다. 이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등 ‘포퓰리즘 인사’를 시행했다. 재판을 잘해도 승진을 못 하고, 후배 판사들에게 인기만 얻으면 법원장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법원에 들여온 것이다. 그러자 실력 있는 판사들이 줄줄이 법원을 떠났다.

이후 김 대법원장 자신이 회장을 지낸 법원 내 진보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법관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게 됐다. 이들은 당시 문재인 정부의 코드에 맞는 특정 정치·이념 성향에 따라 법원 재판과 사법 행정을 좌지우지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정치·이념 편향 인사, 포퓰리즘 인사를 개혁하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법원의 정치화’를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의 정치화’는 각종 판결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지난 6월 대법원은 야당과 노조가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의 핵심 조항과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불법 파업으로 피해를 본 기업이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노조원 각자의 가담 정도에 따라 개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판결의 주심은 우리법 출신 노정희 대법관이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사실상 입법에 해당하는 판례를 만든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급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으면 판사가 우리법, 인권법 출신인지부터 살피게 된다”고 말할 정도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법 출신인 김미리 부장판사를 법관 인사 원칙을 어기고 같은 법원에 4년간 두면서 조국 전 법무장관의 각종 비리에 대한 재판을 지연시켰다. 또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서 벌금만 구형됐는데도 이례적인 중형인 징역 6개월을 선고한 박병곤 판사도 정치 성향이 판결에 과도하게 반영된 사례로 꼽힌다.

그래픽=이진영

◇“신속한 판결 이뤄져야”

김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 폐지와 함께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하면서 ‘재판 지체’ 현상이 심각한 부작용으로 등장했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전국 법원에서 민사 합의부 1심 재판은 평균 293일 만에 끝났는데 갈수록 처리 기간이 길어졌다. 특히 2020년(309일), 2021년(364일)과 2022년(420일)에는 해마다 50일 넘게 재판이 늦어졌다. 항소심과 대법원 재판도 잇따라 늘어졌다. 형사재판도 비슷한 추세로 지체됐다. 재판이 늦어지면 재판받는 국민의 고통이 커진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원은 국민을 위해 재판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법 서비스 기관”이라며 “재판 지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도입되면서 재판을 게을리하는 후배 판사들을 법원장이 나무라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가 없어지면서 재판을 열심히 하려는 의욕을 잃었다는 판사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폐지하는 등 ‘재판 지체’를 개선할 방안을 이 후보자가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재판을 잘하는 판사들에게는 보직, 해외 연수에서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속한 판결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