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6년간 법원의 가장 큰 문제로 ‘재판 지체’가 꼽힌다. 판사 한 명당 재판 부담이 계속 줄었는데도 사건 처리 기간은 갈수록 길어졌다. 재판을 받는 국민 입장에서는 과거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부담하면서 분쟁 해결은 늦어지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도 재판 지체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거듭 말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했다. 한 법조인은 “김 대법원장이 ‘재판 지체’라는 무거운 짐을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게 넘겨주는 것”이라며 “이 후보자가 취임하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대전고법원장이던 작년 4월 중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아 법원이 제때에 답을 주지 못한다면 국민이 답답할 것”이라며 “이런 법원에 국민이 많은 보수를 주면서 (법원을) 유지하기를 바라겠느냐”고 밝힌 바 있다.
◇127일 늦어진 민사 1심 재판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했다. 그해 민사 1심 합의부 사건은 평균 293.3일에 처리됐다. 그런데 이 기간은 이후 해마다 길어졌다. 2018년(297.1일), 2019년(298.3일), 2020년(309.6일), 2021년(364.1일) 등을 거치면서 사건 처리 속도가 24% 느려졌다. 또 작년에는 민사 1심 합의부 사건 처리에 평균 420.3일이 걸렸다. 최근 6년간 민사 1심 합의부 사건 처리가 127일 늦어진 것이다.
같은 기간 형사 1심 합의부 사건도 처리 기간이 갈수록 길어졌다. 2017년(150.8일), 2018년(147.8일), 2019년(158.7일), 2020년(176.5일), 2021년(197.7일), 2022년(204일) 등 많게는 한 해에 20일 넘게 사건 처리가 늦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형사 1심 합의부 사건이 처리되는 기간이 최근 6년간 53.2일 늘어났다.
1심 재판뿐 아니라 항소심과 대법원 재판도 늦어졌다. 특히 민사 사건에서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기간이 최근 6년간 96일, 235일씩 길어졌다.
◇“재판 부담 줄었는데 사건 처리 늦어져”
김 대법원장 임기 6년간 눈에 띄게 악화한 재판 지체에 대해 법원은 “사건 수가 많아지고 내용도 복잡해져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법원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경제학회장 출신인 김두얼 명지대 교수는 판사 한 명이 연평균 처리하는 사건 수와 난이도를 반영하는 ‘판사 1인당 업무 부담’ 지표를 개발했다. 판사들의 업무 분석을 통해 민형사 단독, 합의 등 각종 사건 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각각 분석해 가중치를 매겨 재판 부담을 계산한 것이다.
본지가 김 교수와 함께 분석한 결과, 판사 1인당 업무 부담은 2015년을 100으로 봤을 때 이후 꾸준한 감소세를 보였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95), 이어 2018년(89)·2019년(90)·2020년(89)·2021년(87)을 거쳐 작년(82)까지 약 14% 줄어들었다.
김 교수는 “판사 업무 부담은 줄어들고 있는데 사건 처리 기간은 늘어나는 비상식적 현상이 법원에 벌어졌다”며 “판사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법부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실패’ 일어나기 전에 해결해야”
재판 지체에 대해서는 김 대법원장도 문제로 인정하고 해소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작년 9월 ‘법원의 날’ 기념사에서 김 대법원장은 “최근 법원에 제기되고 있는 재판 지연 현상에 대한 여러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고 이를 타개할 방안에 대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면서 “재판이 지연될수록 재판을 받는 당사자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 뒤에도 김 대법원장은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의 말과 달리 재판 지체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민사 1심 합의 사건 처리에 평균 458.8일이 걸린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한 해 평균(420.3일)보다 한 달 넘게 길어진 것이다. 올해 상반기 형사 1심 합의 사건 처리 기간(203.5일)도 작년 한 해 평균(204일)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이대로 두면 ‘재판 지체’에 그치지 않고 ‘재판 실패’로 악화할 우려가 있다”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없애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만든 뒤로 일선 법원 판사들이 ‘1주일에 3건만 선고하겠다’고 사실상 담합했다”면서 “최선을 다하는 판사들이 더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원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