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이 6일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국회에서 부결됐다.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 부결은 1988년 ‘정기승 임명 동의안’ 이후 헌정사에서 두 번째다. 후보자 재지명, 국회 인사청문회와 표결 등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해 두 달 이상의 ‘사법 공백’이 빚어질 전망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는 지난달 24일 끝났다. 동의안 표결이 미뤄지면서 선임 대법관인 안철상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 대행을 맡아왔다. 권한 대행의 업무 범위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대법원장의 상징성과 중요성을 고려할 때 권한 대행의 역할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법 해석이 지배적이다.
새로운 대법원장이 ‘김명수 체제’가 만든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는 과제부터 미뤄지게 됐다. 일선 법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재판 지체 현상, 그런데도 법원장들이 후배 판사 눈치를 보게 하는 ‘인기투표식’ 법원장 후보 추천제, 정치 편향 판사들을 형사 재판부에 배치하는 인사(人事) 시스템 등에 대한 ‘개혁’이 예고돼 있었는데, 민주당의 ‘이균용 임명안’ 부결로 멈추게 됐다.
대법원장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내년 2월 법관 인사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집회·시위 사건과 행정부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행정법원을 비롯해 서울동부지법, 서울서부지법 등의 일선 법원장, 각 법원 수석부장 등의 인사가 그때 예정돼 있다.
내년 1월 안철상 대법관이 퇴임하면 민변 회장 출신 김선수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는다. 김선수 권한대행과 함께, ‘김명수 대법원’의 편향 인사에 관여했던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내년 2월 인사 판을 짜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에 우호적인 판사들을 요직에 ‘알박기’ 할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김명수 체제 시즌2′가 되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기에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윤미향 사건’ 등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기소된 사건에서 담당 판사들이 재판을 질질 끄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대법 전원 합의체도 사실상 마비 상태에 들어간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으로 이뤄진 전합(全合)은 새로운 법률 해석과 판례를 제시해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대법관 의견이 6대6으로 의견이 갈리면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금 구조에서 안철상 권한대행이 대법원장 역할을 맡게 되면, 대법관 숫자가 11명인 상태에서 전합이 진행되어야 한다. 법원 관계자는 “그런 상태에서 전합을 한다손 치더라도 패소한 쪽에서 결과를 수용하겠느냐”고 했다. 현재 대법원은 전합 사건 5건을 심리 중이다. 그중 하나가 스포츠 마사지를 의료법상 안마의 범위에 제외해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허용할 것인지를 다루는 사건이다. 5000명으로 추산되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이 재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게다가 대법원장 공석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대법 전합 구성원은 10명으로 줄어든다.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이 내년 1월 1일 임기 만료로 퇴임하기 때문이다. 대법관 임명제청은 대법원장에게 부여된 헌법적 권한이어서 권한대행이 행사할 순 없다.
전합 외에 소부(小部)에서 대법관 1명이 연간 처리하는 사건이 3600건에 이른다. 한 법조인은 “대법원 재판 지체가 본격화하고, 대법원 재판 기능의 축소는 하급심의 판결 지연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이날 “부결의 진짜 이유는 사법부 길들이기나 범죄 혐의자에 대한 방탄 같은 민주당의 정치 역학적 이유”라며 “그런 명분 없는 이해타산 때문에 사법부가 혼란을 갖고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도 “국민이 재판을 받을 권리는 언제든지 공백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어려운 사태가 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