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마약 사범이 다른 사람의 마약 범죄에 대해 진술하면 형벌을 감면받을 수 있게 해주는 ‘리니언시(leniency)’ 제도 도입을 검찰이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19일 전해졌다. 최근 마약 범죄가 급증하고 있고 조직 범죄로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내부 고발이 없으면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원래 리니언시는 공정거래법상 담합 행위에 가담한 기업이 이를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과 시정 조치를 감면받고 형사 고발도 면제되는 제도를 뜻한다. 이 제도는 기업들이 몰래 짜고 가격이나 물량을 통제하는 카르텔을 적발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은 마약 범죄도 카르텔의 일종이며 이에 대해 적극 진술하는 마약 사범에게 리니언시를 적용하면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마약 판매자를 붙잡아 리니언시를 조건으로 마약 공급선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면 ‘몸통’을 검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1~8월 국내에서 마약류 사범으로 단속된 사람은 총 1만8187명으로, 작년 전체 단속 인원(1만8395명)과 맞먹는다. 또 작년 같은 기간(1만2230명)과 비교하면 48.7% 증가했다.

현재 마약 범죄 리니언시 제도가 없지만 실제로는 마약 사건에서 우회적으로 리니언시가 적용되고 있다. 마약 사건을 수사하는 한 검사는 “공범에 대해 진술하는 마약 사범에 대해서는 검찰이 그가 수사에 협조했다는 공적 조서를 법원에 제출한다”고 했다. 마약 사건 전문인 박진실 변호사도 “마약 사건에서 공범 진술은 공급책까지 올라가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에 마약 재판에서 ‘적극적 수사 협조’는 형량 결정에 중요한 요소”라며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한 마약 사범에 대해 법원도 감형한다”고 했다.

마약 범죄 리니언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 독일은 지난 2009년 형법 개정으로 마약, 조직 범죄 등에 가담한 피의자가 다른 사람의 범죄에 대해 증언하면 형벌을 감면받을 수 있는 조항을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경제 범죄에 리니언시 제도가 이미 도입됐다. 주가 조작 피의자가 같은 사건에서 다른 피의자의 혐의를 규명하는 진술을 하면 감형하는 조항 등을 신설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지난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리니언시는 ‘플리 바게닝(plea bargaining)’과는 다른 제도다. 플리 바게닝은 범죄자가 ‘본인’ 혐의를 시인하고 형사 처벌을 감면받는 미국식 제도인데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았다.

마약 범죄 리니언시 도입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한 법조인은 “내부자의 협조 없이 마약 수사가 어렵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마약 사범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