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불법 대복 송금’ 사건으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이 언론에 공개한 법관 기피 재판 소송 서류에 국정원 기밀문서가 그대로 인용된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달 23일 1심재판을 맡고 있는 수원지법 재판부(재판장 신진우)를 바꿔 달라며 기피 신청을 냈다. 재판을 편파적으로 진행한다는 이유였다. 이 기피 신청은 지난달 1일 수원지법에서 기각됐고 이에 대한 항고도 같은달 17일 수원고법에서 기각됐다. 그러자 같은달 27일 대법원 판단을 받겠다며 재항고장을 대법원에 냈다. 그러면서 38쪽의 재항고장을 수원지역 출입기자단에 공개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재항고장 일부에 스캔 형태로 인용된 서류가 국정원 비밀 문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은 남북교류 협력 사업이 기대에 못미치자 북한 조선 아태위 실장인 김성혜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그와 가까운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에게 이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하고, 김성혜도 안씨를 접촉한 후 그에게 200만~300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화영씨 측은 이 문건을 인용하며 “대북지원이 급한 것은 안부수였지 이화영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된 이 국정원 문건에는 ‘2급 비밀’ 도장이 찍혀 있다고 한다. 국정원 보안업무규정에 따르면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막대한 지장을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 이다. 이 때문에 문서를 작성한 국정원도 비공개를 신신당부했고, 재판에서도 문서 제시가 필요한 부분은 비공개로 진행했다고 한다.
검찰은 재항고장 언론 공개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용이 어느 정도 알려졌더라도 비밀에 해당하는 보고서 자체를 그대로 옮겨 붙이고 이를 언론에 공개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재항고에 대한 의견서에서 이 같은 공개행위가 소송서류의 목적 외 남용을 금지한 형사소송법 조항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쌍방울 측에서 법인카드와 법인차량 등 약 3억 2000만원을 뇌물로 받은 혐의 및 스마트팜 대북지원 사업비 500만달러 및 이재명 대표의 방북비용 300만달러를 쌍방울과 김성태 전 회장에게 대납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작년 10월 뇌물 혐의로 기소된 후 지난 3월 대북송금 혐의가 추가됐으며 주요 증인신문을 마치고 현재 재판이 마무리단계인데 기피신청과 항고, 재항고로 재판이 멈춰 있다.
검찰은 이씨 측이 1심 유죄판결을 받지 않기 위해 ‘꼼수’ 기피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지적에 이씨 측은 “검찰이 만든 프레임”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씨 변호인인 김광민 변호사는 지난 8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기피 신청을 하면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한 두 달은 걸린다”며 “1월에 재판이 재개된다고 해도 판결 선고는 다음 재판부가 하게 된다”고 했다. 재항고장에서도 “검찰의 주장은 스스로 제출한 증거기록과도 모순된다. 다만 비(非)진술증거와 증인들의 말만이 법정에 쌓이는 바람에 법관들이 유죄의 선입견에 빠져 버렸다”고 했다.
검찰은 대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변호인의 유튜브 방송 내용을 인용해 ‘기피신청의 주 목적은 재판지연’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 측은 기피 재판의 재항고장에서도 ‘기피 사유’보다는 사건의 실체에 대한 무죄 주장을 펴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