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1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424호.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 조민(33)씨는 1시간 21분 동안 진행된 증인 신문에서 대다수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조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김택형 판사 심리로 열린 전(前)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사무국장 김모씨의 위증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씨는 조씨의 어머니 정경심(전 동양대 교수)씨의 ‘자녀 입시비리 재판’에 거짓 증언한 혐의로 작년 9월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김씨가 정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2009년 5월 서울대 국제인권법센터 세미나 당시 조씨를 봤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에서 시작됐다. 조씨는 이날 세미나가 시작하기 전부터 온 사실이 없고, 함께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친구 2명과 세미나 준비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거나 세미나 준비를 도운 사실이 없다는 것이 검찰 조사 결과다. 정씨 재판에서 법원은 이미 조씨가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으며, 정씨는 대법원에서 징역4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이날 재판은 조씨가 2009년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가 주최한 세미나에 실제로 참석했는지를 놓고 검찰과 조씨가 공방을 벌였다. 조씨는 “세미나에 참석한 것은 분명하나 그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검찰은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경고하면서 참석 경위, 세미나 개최 시간, 참석 교수 등에 대해 물었다.
검찰은 세미나 당시 조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찍힌 영상과 조씨가 다녔던 한영외고의 교복을 제시했다. 검찰은 “영상 속 인물이 입은 옷을 보면, 흰색 깃이 달린 셔츠와 검은색 또는 어두운 계통 색의 어깨 패드가 달린 재킷”이라며 “이는 조씨가 다녔던 한영외고의 교복 재킷과는 다르다”고 했다. 세미나가 열린 2009년 5월 15일은 금요일로 학기 중인 평일이었고, 세미나 시작 시간이 오후 2시였던 만큼 조씨가 교복을 입고 세미나에 갔을 텐데, 영상 속 인물과 차림새가 다르지 않느냐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조씨는 세미나 당일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조씨는 “교복을 입고 갔는지, 중간에 옷을 갈아 입고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학회 등에 참석할 땐 검은 정장을 입지 않냐”며 반박하기도 했다.
조씨의 반박에 검찰은 당시 학회에 참석한 고교생 A씨의 검찰 진술을 제시했다. 검찰은 “A씨는 당시 조씨와 다른 B고교에 다니고 있었고, 이날 세미나에 교복을 입고 참석했다고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며 “B고교의 교복이 검은색 계통의 어깨 패드가 달린 재킷”이라고 했다. 조씨가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영상 속 인물이 실제로는 조씨가 아니라 B고교에 다니는 A씨의 친구 아니냐는 것이다. 조씨는 다시 “세미나에 어떤 옷을 입고 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며 “다만 영상 속 인물은 내가 맞다”고 했다.
조씨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증언은 계속 이어졌다. 검찰 측은 “세미나 개회 전 행사는 무엇이었냐” “아버지(조국 전 법무장관)를 제외한 세미나 참석자가 누구였나” 등 당시 상황을 물었지만 조씨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조씨는 이날 영상 속 인물이 자신이라는 근거로 ‘왼손잡이’도 언급했다. 영상 속 인물이 왼손으로 펜을 잡고 메모하는데, 자신이 펜을 잡는 특이한 버릇과 같다는 것이다. 검찰 측은 조씨에게 펜을 쥐어보라며 건넸고, 조씨는 검지와 중지로 펜을 감싸쥐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검찰 측은 “왼손잡이가 펜을 잡는 모습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증인과 비슷하다”며 “영상 속 여학생이 증인이란 걸 뒷받침하기엔 어렵다”고 했다.
한편, 김 판사는 이날 조씨에 대한 과태료 부과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사건을 심리하던 채희인 판사는 법관 정기 인사 전인 지난 1월 증인 출석 요구에 불응한 조씨에게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한 바 있다. 그런데 김 판사는 이날 조씨가 법정에 출석해 증언했다는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