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출석을 거부하며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은 재판부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502호, ‘민주당 돈봉투’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재판을 심리하는 형사21부 허경무 부장판사는 송 전 대표와 변호인들이 모두 불출석하자 이같이 말했다. 송 전 대표와 변호인단은 이날 오전으로 예정된 재판에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지자들로 가득 차던 법정 방청석도 취재진 10여명만 앉아 있었다. 허 부장판사는 “법정에 들어오기 전에 30~40분 정도 오늘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지 시뮬레이션 했는데, 피고인 측에서 한 명도 안 나오는 바람에 엉망이 됐다”고 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뉴스1

허 부장판사는 이날 재판을 진행하는 대신 송 전 대표의 재판 거부에 대한 재판부의 입장을 전했다. 그는 “법정에 나와 자신의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했다. 변호인들이 불출석한 것에 대해선 “변론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음 재판에도 변호인들이 불출석할 경우, 국선 변호인을 선정해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허 부장판사는 재판이 지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이 재판은 멈출 수가 없는 재판”이라며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불가피하게 불출석 재판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형사재판엔 피고인이 출석해야 하나,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引致)가 불가능한 경우 불출석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허 부장판사는 “향후 재판 일정이나 구속 만료 기간 등을 고려할 때, (송 전 대표의) 구속 기간 안에 주요 증인에 대한 신문을 완료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든다”고도 했다. 이 재판은 1일과 이날 송 전 대표가 연속으로 불출석해 두 차례 공전됐는데, 이와 관계없이 주요 심리를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송 전 대표의 구속 기간은 오는 7월까지다.

검찰도 이날 법정에서 송 전 대표의 ‘재판 거부’에 대해 “사법체계를 존중하고 따르는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검찰 측은 “매일 야근하면서 힘들게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많은 사람들, 파트타임‧비정규직으로 사는 청년들과 같은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 재판을 거부한다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송 전 대표는) 보통 국민들은 상상도 못하는 특권을 마치 맡겨놓은 물건을 돌려달라고 하는 듯 하다”며 “광역단체장 출신이고 5선 국회의원이면서 집권여당의 당 대표를 역임한 피고인이 할 수 있는 말인가”라고 했다.

법조계에선 “법원이 재판 진행을 엄격히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법조인은 “‘대장동 재판’의 피고인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선거 유세를 이유로 불출석하니 법원이 강제 구인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며 “불출석을 내세운 재판 지연 전략은 효과가 없어진 셈”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4‧10 총선 전날인 9일 대장동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