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이른바 ‘기후 소송’에 대한 첫 공개 변론을 23일 진행한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의 생명권과 환경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청소년 환경 단체 등이 낸 헌법소원 4건에 대해 본격 심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후 소송’ 4건, 헌재 본격 심리
국내 최초의 기후 소송은 지난 2020년 3월 제기됐다. 청소년 환경 단체인 ‘청소년 기후 행동’ 회원 19명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옛 녹색성장법과 시행령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7년 대비 24.4%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이는 국제 기준에 비춰 부족하고 기후 위험을 예방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 2022년 시행령이 차례로 제정됐다. 여기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로 감축한다는 목표가 설정됐다. 그러자 청소년 환경 단체는 “이 법과 시행령도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면서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과잉 침해한다”는 주장을 헌법소원에 추가했다.
비슷한 취지의 헌법소원의 세 건이 더 제기됐다. 시민 123명, 영유아 62명의 부모, 다른 시민 51명이 지난 2021년부터 작년까지 잇따라 헌법소원 청구인으로 나섰다. 헌재의 23일 공개 변론은 첫 기후 소송이 제기된 이후 4년 1개월 만이다.
◇“정부 조치 미흡” VS “실정에 맞춘 것”
기후 소송 청구인들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이행이 불충분하며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8년 대비 40%로 감축’ 목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며 이행도 2028년 이후로 대폭 미뤄져 문제라는 것이다. 또 이들은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재원 조달 방법도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청구인들은 “정부는 현재 세대가 져야 할 책임을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고 있으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생명권, 건강권, 평등권, 환경권, 재산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당했다”고 한다.
반면 정부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근거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각국의 산업 구조, 배출량 정점 및 감축 시작 시기 등 실정에 맞춰 결정하는 것인데 이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40% 감축’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 비율이 높은 국내 여건에서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산업 부분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인 조치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이 2028년 이후 높아지는 이유는 감축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필요한 시간, 정책 효과 발생을 위한 시차 등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국내 산업계 “비현실적 논의”
해외에서는 기후 소송에서 승소 사례가 나온 바 있다. 지난 2021년 독일 헌재는 “미래 세대를 보호하는 예방 조치도 국가의 의무”라고 판단했다. 또 네덜란드 대법원도 지난 2019년 “정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의 25%까지 감축하라”면서 “정부와 국회의 재량은 위반하지 않은 때에만 허용되는데 (환경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국민 인권이 침해된다면 (사법부가) 법으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헌재는 기후 소송을 심리한 전례가 없다. 한 변호사는 “헌재가 공개 변론을 하기로 했지만 이 소송이 도중에 각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헌법소원은 다른 법적 구제 절차를 모두 거친 경우에만 허용되는데 기후 소송은 다른 절차 없이 바로 헌재로 왔다. 또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기후변화 피해가 생겼다는 점을 증명하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번 소송을 두고 국내 산업계에서는 “비현실적인 논의”라는 반응이 나온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목표를 내놓자마자 해마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늘어나 버릴 정도로 무리한 계획이었던 것”이라며 “4.9%대인 연간 감축률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에너지·산업·건물·수송 등 주요 부문 가운데 비율이 가장 큰 산업 부문 배출량은 0.4% 줄어드는 데 그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탄소 감축만 추구한다면 모든 공장을 다 멈추는 게 맞지 않느냐”며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려다 가난한 지구를 물려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