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불륜을 입증하려고 스마트폰에 ‘스파이 앱’을 깔아 녹음한 파일은 위법한 증거여서 가사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A씨가 상간녀 B씨를 상대로 낸 위자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와 남편은 2011년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의사였는데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된 B씨와 여러 차례 데이트하는 등 바람을 피웠다.

A씨는 2019년 5월 이 사실을 알게 됐지만 남편과 곧바로 이혼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거꾸로 남편이 2020년 10월 A씨의 외도를 알게 되면서 부부는 이듬해 3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이후 A씨는 2022년 상간녀 B씨를 상대로 3300만원의 위자료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재판에서 남편 몰래 스마트폰에 설치한 ‘스파이 앱’을 통해 확보한 B씨와의 통화 녹음 파일을 제출했다. 상대방 스마트폰에 스파이 앱을 설치하면 해당 스마트폰의 통화나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확인 가능하지만, 이는 법률상 불법 감청에 해당한다.

B씨는 재판에서 A씨가 제출한 통화 녹음 파일은 위법 수집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녹음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고 B씨가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민사 소송절차와 이를 준용하는 가사 소송절차에선 형사소송법의 법리에 따른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 배제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상대방 동의 없이 증거를 취득했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같은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제3자가 전기통신의 당사자인 송신인과 수신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한 행위는 전기통신의 감청에 해당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며 “불법감청에 의해 녹음된 전화 통화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가 제출한 해당 파일은 불법 증거여서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에도 ‘불법감청에 의해 얻거나 기록한 통신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은 통화 녹음 파일이 아닌 나머지 증거만으로도 B씨의 부정행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해 위자료 1000만원 지급을 명령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