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시절 총 800만달러를 북측에 대납한 혐의로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이 대표의 방북비용을 두고 북한 측과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북한 측의 요구에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17일 전해졌다. 당시 김 전 회장은 북한 측에서 방북비용으로 500만달러를 요구하자 이화영(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씨에게 “내가 호구도 아니고 달라는 대로 다 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2019년 1월 이화영(맨오른쪽)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김성태(왼쪽에서 둘째) 전 쌍방울 회장이 중국 선양에서 북한 조선아태위 송명철(오른쪽에서 둘째) 부실장, 국내 민간 대북 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 안부수(맨왼쪽) 회장 등과 술자리를 하고 있는 모습./독자 제공

본지가 취재한 이 대표의 공소사실 등을 종합하면, 검찰은 50쪽 분량의 공소장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비용으로 300만달러가 책정된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방울과 북한 측의 협력 관계는 2019년 1월 17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양측이 스마트팜 사업 추진 등을 골자로 한 협약을 체결하면서다. 같은해 5월 이화영씨는 쌍방울과 북한 측이 실무 협약을 체결하는 기회를 이용해 이 대표의 방북을 요청해달라고 김 전 회장에게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회장은 북측 공작원 리호남을 만나 “이재명 지사를 공식적으로 초청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때 리호남으로부터 “경기지사가 방북하려면 의전비용도 필요하고 성대하게 할 테니 500만달러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귀국한 뒤 서울의 한 식당에서 이화영씨를 만나 “방북비용으로 북한에서는 500만달러를 얘기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내가 호구도 아니고 달라는 대로 다 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김 전 회장에게 “100만달러 정도 김 회장이 내주고 추진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김 전 회장에게 방북비용 대납을 요구한 것이다. 이씨는 이 시기 김 전 회장과 방용철(전 쌍방울 부회장)씨에게 ‘이 지사와 함께 방북해 협약식 내용을 공개하면 쌍방울 그룹은 30대 재벌이 무조건 된다. 이재명 방북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하니, 되는 쪽으로 진행하자’라는 취지로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뉴스1

김 전 회장은 이화영씨의 요구를 승낙했다. 김 전 회장은 방씨를 통해 그해 5월 중순부터 7월 초순까지 중국 단둥 일대에서 리호남을 수차례 접촉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회장은 이 대표의 방북비용을 100만달러 내지 200만달러 수준으로 합의하려 시도했는데, 리호남으로부터 “300만달러 밑으로 안된다”는 말을 듣고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 김 전 회장은 이씨에게 “북한 측에서 방북 의전비용으로 300만달러를 요구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하겠냐”며 “이 지사 방북만 되면 모두에게 좋으니 진행하는 게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화영씨는 “김 회장 고맙다”고 화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화영씨가 이런 방북비용 대납 과정 일체를 이 대표에게 보고하고, 이 대표가 이를 승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이씨가 김 전 회장을 통한 도지사 방북 추진 상황을 이 대표에게 꾸준히 보고해왔고, 이 대표가 이 계획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오른쪽)와 이재명 전 경기지사(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기도

김 전 회장이 북측과 ‘방북비용 대납’ 합의에 이른 2019년 7월, 경기도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측과 함께 ‘제2회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이 대표는 자신의 선거법 위반 재판 항소심 일정이 겹치며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이화영씨는 이때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김 전 회장을 바꿔주었고, 김 전 회장은 이 대표에게 “북한 사람들 초대해서 행사를 잘 치르겠다. 저 역시도 같이 방북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이 대표는 “알겠다. 잘 부탁드린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방북비용 대납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김 전 회장과 이 대표가 계속해 소통을 해온 셈이다.

이 대표는 작년 9월 수원지검에 피의자로 출석해 조사를 받을 당시 “대북 사업은 이화영씨가 독단적으로 추진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법조인은 “이 대표가 방북비용 대납 전후로 ‘전주(錢主)’인 김 전 회장과 소통한 정황이 밝혀진 이상 혐의를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