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필 대법관 후보자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노경필(60·사법연수원 23기) 신임 대법관 후보자가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22년 전 배우자의 위장전입을 시인하며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노 후보자는 재판 지연 지적에 대해선 “악의적인 절차 지연을 위한 권리 행사를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노 후보자는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배우자가 2002년 지인의 집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에 6개월 동안 실제 거주하지 않았음에도 전입을 했다는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여수시갑)의 의혹 제기에 “당시는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근무하며 온 가족이 순천에 거주했을 때”라며 “몇 년 뒤 수도권·서울로 전출이 예정돼 있어서 어디서 거주할 것인지를 고려하면서 배우자가 잠시 주소를 옮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요건도 도저히 되지 않고 공직자로서 처신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해 6개월 만에 아무것도 없이 돌아왔다”며 “경제적 이득이 있었다거나 아이의 교육 문제가 있었다든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명했다. 이후 이와 관련된 추가 질의에서도 “자녀 입학을 위한 위장전입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주 의원이 “실제 살지 않으시면서 배우자만 주소를 옮긴 건 인정하시는 거네요”라고 하자 노 후보자는 “송구합니다”라고 답했다. 주 의원은 “지금이라도 사실 인정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노 후보자는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부산 서구동구)이 재판 지연 문제를 거론하며 신속한 형사재판을 위해 정책적으로 어떤 게 필요한지에 관해 묻자 “최근 형사재판에서 지연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사건 수가 많고 내용이 복잡해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한편으로는 피고인의 적극적 권리 보장 주장들이 많아서 여기에 대응하다 보면 지연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곽 의원이 “전문화 문제에 법원이 조직적·정책적 대응을 못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자 노 후보자는 “많은 연구 조직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판연구관을 다양화하고 전문 인력도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노 후보자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를 암시하는 의원들의 각종 질의에 즉답을 피했다.

노경필 대법관 후보자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 선서를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그는 김기표 민주당 의원(경기 부천시을)이 이 전 대표의 재판 병합 신청을 대법원이 기각한 것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하자 “원론적으론 병합하는 것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경우가 많지만, 실체적 진실 발견과 신속한 재판 등 해당 재판부에서 여러 사정을 고려해 적정한 결론을 내렸을 것”이라고 답했다.

병합하게 되면 실체적 진실 발견에 방해가 되느냐는 질문엔 “심리가 동시에 진행돼야 하므로 실체적 진실 발견이나 신속한 재판이 저해될 가능성도 있다”며 “주어진 사건을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려드리는 것이 피고인에게도 유리하다”고 했다.

노 후보자는 유력 정치인의 재판 지연이 심각하다는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의 질의에는 “개별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경기 수원시을)이 김 여사의 계좌 거래 내역을 제시하며 “김건희 여사가 아닌 일반적인 사안으로 가정했을 때 공범이라 생각하느냐”고 질의하자 노 후보자는 “구체적인 사안을 모르고, 향후 그 사건을 제가 담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말씀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백 의원이 “명품백 관련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에선 인사청탁 관련해서 금품을 수수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구두로 말씀 좀 부탁한다”고 하자 노 후보자는 “그런 목적으로 공직자 배우자가 받는다면 부당한 것이라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비례대표)이 “윤석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데 친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노 후보자는 “없다”고 했다. 박 의원이 “사적, 공적으로 윤 대통령을 만난 적 있느냐”고 하자 “10여 년 전쯤에 그때 제가 서울고법에 근무하고 그때 (윤 대통령이) 서울에 계실 때 한 번 정도 점심에 동기들 모임을 했었던 기억이 있고, 그 외에는 만나 뵌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여야 의원들은 검찰이 지난 20일 김 여사를 비공개 소환 조사를 한 것에 관한 생각을 여러 차례 물었지만 그는 “현재 수사 중인 수사 절차에 대한 사안이라 수사 기관에서 적절히 판단할 문제라 생각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반복했다.

또 노 후보자는 시청역 역주행 사고와 관련한 ‘급발진’ 주장이 대법원에서 인정된 적이 없는 이유는 소비자에게 입증 책임이 전가되기 때문이라는 허영 민주당 의원(강원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갑)의 지적에는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전문화된 상황에서 손해배상을 위한 입증 책임이 완화되거나 전환되어야 한다는 지적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태 의원이 “교제폭력이 최근 화두이고 젠더 갈등으로 번지는 측면도 있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고, 가해자를 더 강력하게 처벌하는 방식으로 잠재적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질의하자 노 후보자는 “데이트 폭력이 사회문제화됐고, 양형 기준이 너무 적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박 의원이 “정치권의 법관 탄핵 주장에 대해 입장을 말씀해달라”고 하자 노 후보자는 “탄핵은 공직자를 그 직에서 파면하는 행위로 헌법과 법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있었을 때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판사도 공직자이기 때문에 탄핵소추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결코 정치적인 진영이나 이념에 따라 남용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법관에서 퇴직하면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후학 양성에 기여하길 희망한다”며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경필 대법관 후보자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전남 해남 및 서울대 법대 출신인 노 후보자는 1997년부터 법관이 됐고, 서울고법 부장판사, 수원고법 수석부장판사를 지냈다. 5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헌법·행정 사건을 맡았으며, 재판 진행을 잘하는 ‘정통 법관’으로 평가받는다.

인사청문회를 마친 노 후보자는 앞으로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 최종 임명될 전망이다.

국회 대법관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24일과 25일에는 박영재·이숙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