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 대법관이 1일 퇴임사에서 “법관을 법조 경력 5년 이상인 사람 중에서 임용하는 방안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법관은 재야(在野) 변호사 시절 참여정부 사법개혁비서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민변) 회장 등을 지내며 장기 법조 경력자를 법관으로 뽑는 ‘법조 일원화’ 제도의 도입∙확대를 강조해왔다. 법조계에서는 “김 대법관이 법원을 직접 경험하며 확고했던 생각이 바뀐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김 대법관은 이날 오전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신규 법관의 임용 트랙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법관 임용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법원은 최소 5년 이상 법조 경력을 쌓은 검사나 변호사를 법관으로 뽑고 있다. 현행 법원조직법에 따라 내년부터 요구되는 법조 경력은 7년, 2029년에는 10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김 대법관은 “신규 법관 임용 자격을 법조경력 10년 이상으로 하는 현행 법조 일원화 제도는 1심 재판의 원칙적 단독화와 예외적 합의부의 대등 구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그런데 여전히 지방법원은 합의부 사건의 비중이 높고, 합의부 재판에 대한 국민의 요구도 높다. 합의부 배석 판사 임용의 필요성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법조 일원화를 도입할 당시의 구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합의부 배석 판사로 시작할 법관은 법조 경력 5년 이상인 사람 중에서 임용하는 방안을 유지하고 ‘전담 법관 제도’와 ‘원로 법관 제도’를 통해 장기간의 법조 경력자를 임용하는 방안을 병렬적으로 운영해 법조 일원화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참여정부에서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 및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추진단장을 거치며 법조 일원화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민변 회장 등을 지내면서 경력이 풍부한 법조인을 법관으로 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관 후보자 시절에도 그는 “법조 일원화를 가능한 한 빨리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게 법조 비리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6년간 대법관을 지내면서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능력 있는 젊은 판사를 뽑아 재판 지연을 해소하려면 법관 임용 법조 경력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 대법관은 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등 사건에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에 무죄를 선고해온 대법원 판결의 한계를 에둘러 지적하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법관은 “대법원은 직무 권한이 없는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권한이 있는 것처럼 거짓 행사한 경우 직권남용죄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해 왔다”며 “국민의 법 감정과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어 그러한 판결이 선고될 때마다 법원에 대한 비판이 빗발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법률을 개정해 법원으로 하여금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석론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사건에서 ‘권한이 없으면 남용도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며 무죄를 확정했다.
김 대법관은 또 대법원 내 균형 잡힌 토론과 결론 도출을 위해 판·검사 출신이 아닌 대법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법관은 “평생 법관으로 살며 법대 위에서 사회 현실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동료 대법관들에게 법대 아래에서 전개되는 사회 현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소외를 잘 전달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런 대법관이 각 소부에 1명씩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판·검사 경력이 없는 최초의 대법관이었다.
이날 함께 퇴임한 노정희 대법관은 “사법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를 위한 헌법 정신을 모든 업무 수행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다”며 “사법부의 구성 자체에도 다양성의 가치를 구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동원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법적 안정성이 유지돼 국민이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평화와 사회 질서의 확립을 위해 법원이 해야 할 일”이라며 “법원이 새로운 해석을 통해 종전에 선언하였던 법의 내용을 달리 말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관은 자신의 개인적 소신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사람이 지배하는 재판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