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주요 쟁점 중 하나인 ‘고려아연 정상화’ 관련 공방이 법정에서도 이어졌다.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왼쪽부터), 김병주 MBK 대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뉴스1

서울중앙지법 민사51부(재판장 김승정)는 2일 영풍 측이 고려아연 측을 상대로 낸 회계장부 등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한 심문 기일을 진행했다. 심문 기일은 당사자의 주장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을 때 당사자와 이해관계인 등의 진술을 듣고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절차다. 양측은 이날 프레젠테이션 발표 자료를 준비해 각자 입장을 말했고, 심문 기일은 30분 정도 걸렸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 측 최윤범 회장의 원아시아파트너스·이그니오홀딩스 투자 등이 고려아연에 재무적 손실을 가했는지 조사·판단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회계장부 등을 열람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영풍 측은 “주주의 회계장부 등 열람 및 등사 청구권은 주주의 법률이 부여한 정당한 권리”라며 “고려아연이 현 경영진 관련 장부와 서류를 훼손·폐기·은닉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더라도 채무자에게 추후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보전의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맞서 고려아연 측은 “영풍과 사모펀드 MBK가 적대적 M&A(인수합병)의 수단과 공개매수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부당한 목적으로 (신청이) 제기됐다”며 “영풍은 자본의 힘으로 경영권을 빼앗아 현금배당 확대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약탈적 의도로 사모펀드와 손을 잡고 이 사건 공개매수를 시도하고 있다”고 맞섰다.

이어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의 진정한 목적은 고려아연 경영진에 대한 부정적 의혹을 확산해 공개매수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며 “고려아연은 회계장부 등을 훼손·폐기·은닉할 우려가 없고, 영풍 측은 사전에 내용증명 등의 방식으로 열람·등사를 요청한 사실도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날 심문을 종결하되 종합적인 자료 제출 기한은 다음 달 20일로 정했다. 이때까지 필요한 자료를 내고, 상대 측 서면 등을 보며 입장을 밝히라고 했다.

한편 이와는 별개로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김상훈)는 영풍 측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을 상대로 낸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의 결정으로 고려아연은 경영권 방어 수단 중 하나인 자사주 매입을 추진할 수 있게 됐고, 곧바로 총 발행 주식의 15.5%인 320만9009주를 주당 83만원에 사들인다고 공시했다. 총 취득 규모는 2조6634억원이다.

고려아연과 영풍·MBK는 최근 경영권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 설립한 영풍은 1974년 고려아연을 설립했다. 그동안 영풍은 장씨 집안이, 고려아연은 최씨 집안이 경영해왔다. 이후 고려아연은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으로 성장했고, 70여 년간 두 집안의 동업 관계가 이어져왔다. 하지만 2022년부터 양 집안 갈등이 표면화·심화됐다.

최근 영풍·MBK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최 회장 측이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을 방어하겠다고 버티며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양측 공방은 법정에서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