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증교사 혐의 재판 1심 선고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로 복귀하며 미소짓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33부(재판장 김동현)은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함께 기소된 김진성씨에게는 위증 혐의를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김씨가 위증을 한 것은 맞지만 이 대표가 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는 논리입니다.

105쪽에 이르는 판결문 내용 중에는 특이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바로 ‘살인범’ 이야기입니다.

재판부는 “교사자의 정범의 고의는 정범이 어떤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예견으로는 부족하고 행위의 주체, 객체, 결과 등 범죄구성요건적 표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특정될 것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판결문 각주에서 “교사자는 정범이 A를 살해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정범이 B를 살해한 경우 교사자에게 B에 대한 살인죄에 관해 정범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말이 길고 어려운데 하나하나 풀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앞의 부분은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김모씨라는 사람에게 범죄를 교사할 경우 막연히 ‘김씨가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예상만으로는 부족하고 ‘김씨가 A를 죽일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김씨에게 A를 죽이라고 시켰는데 그가 B를 죽인 경우 B를 죽인 결과에 대해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도 ‘대법원 판례 입장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형법에서 범죄의 고의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두 이론이 있습니다. ‘법정적 부합설’과 ‘구체적 부합설’ 입니다. 법정적 부합설은 범죄자가 인식한 사실과 실제 발생한 사실이 법적으로 부합하면 고의를 인정합니다. 예를 들어 A를 살해할 의도로 총을 쐈지만 B가 맞은 경우 B에 대한 살인죄를 인정합니다. 이는 다수 대법원 판례의 입장입니다.

반면 구체적 부합설은 범죄자가 인식한 사실과 발생한 결과가 구체적으로 일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위 사례의 경우 A에 대한 살인미수와 B에 대한 과실치사의 상상적 경합(하나의 행위로 동시에 여러 결과가 발생한 경우의 처리 방식)을 인정합니다.

구체적부합설을 취한 판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살인이라는 결과가 발생한 이상 그 객체가 누구이든 ‘살인죄’를 묻는 법정적 부합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위 각주 내용을 보면 재판부는 구체적 부합설에 입각해 무죄 판결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통화 당시에는 증언을 할 것인지 여부, 어떤 증언을 할 것인지도 미정이었기 때문에 실제 이뤄진 증언 내용에 대해 이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판부가 위증이라고 판단한 김씨 증언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변호사가 “김병량은 증인에게 ‘최철호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면 이재명 변호사는 혼자 싸워야 하는데 더 불리해지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KBS측 고위 관계자와 그 문제를 협의 중이다’라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나요”라고 질문했고 이에 대해 김씨가 “예”라고 답한 부분입니다. 김씨가 ‘모르는 내용을 증언한 것’이라며 위증 자백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는이 대표의 통화 내용에도 없고, 김진성씨가 이 대표의 변호인과 통화하면서 말한 내용이라서 이 대표에게 위증교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재판부 논리입니다.

◇통화에 없었으니 무죄?

과연 그럴까요. 2018년 12월 22일 및 24일 통화 내용을 보겠습니다. 22일 통화에서 이 대표는 “이재명이가 (검사사칭을)한 거로 하면 (최철호를)봐주자 이런 방향으로 좀 정리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주로 내가 타겟이었던 것, 이게 지금 매우 정치적인 배경이 있던 사건이었다는 점들을 좀 얘기를 해 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이에 김씨가 “글쎄,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뭐, 사실은 안 나는데 아무튼 그 필요하신 부분 저기”라고 하자 이 대표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사건이 매우 정치적인 거래가 있는 그러니까 그런 사건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정도, KBS측하고 시청 측이 일종의 협의를 한 거 그 부분을 좀 기억을 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검찰도 나를 손봐야 하고 시도 그렇고 KBS도 전부 다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나한테 덮어씌우면 도움이 되는 사건이었던 거죠” 이후 김씨가 어떤 취지로 해야 할지를 묻고 이 대표가 변론요지서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이후 28일 통화에서 김씨는 ‘변론요지서를 충분히 출력해서 봤다’ 고 하면서도 “애매한 게 그때는 제가 밖에 나와서” “그러니까 내부에서 사실 누가 KBS와 연결됐을지는 모르는데 일정이 아마 애매할 순 있을 거예요”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 대표가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고 합니다. “사건을 재구성하자는 것은 아니고”라고 하면서도 “김 비서님, 그거 좀 꼭 부탁드릴게요. 당시 분위기가 그랬다, 세부적인 건 모르지만 어쨌든 이재명을 걸어 넣어야 할 입장이었다” 고 합니다.

검찰은 이에 기반해 이 대표가 당시 사정을 모른다는 김씨에게 김병량 성남시장과 KBS 사이에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기로 하는 협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텔레그램으로 변론요지서를 보냈으며 김씨는 이를 바탕으로 진술서를 작성하고 변호인으로부터 증인신문사항을 사전에 전송받아 질문 내용을 숙지했다고 봤습니다. 과정 전반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두 사람의 통화를 중심으로 이 사건을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위 증언의 경우 이 대표가 통화 당시에는 말하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에 김씨가 위증한 것은 맞지만 이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협의가 이재명 구속 전에 있었다’ ‘협의 내용은 KBS에 대한 고소를 지속하느냐 여부에 대한 것이었다’ 는 증언 또한 이 대표가 통화 당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씨는 유죄여도 이 대표는 무죄라고 봤습니다.

즉 재판부 판단 내용을 요약하면 이 대표는 김씨와의 통화를 통해 증언을 부탁했고, 통화 당시에는 유죄로 인정된 증언 내용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라는 논리입니다. 통화 당시 김씨의 위증을 이 대표가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살인범’ 이야기를 쓴 것이지요.

그러나 통화 이후 김씨는 이 대표로부터 변론요지서를 받았고, 그에 기반한 진술서도 써 보냈고 이 대표가 강조하는 취지로 한 차례 수정까지 했으며, 재판 전 증인신문사항도 미리 받았습니다. 통화 외에도 이 대표가 요구하는 증언 취지를 숙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교사 행위를 통화로 한정하는 게 맞는지, 통화에 없었다고 김씨가 위증할 것을 몰랐다고 하는 게 맞는지는 의문입니다.

◇'포괄일죄’ 위증을 쪼개서 본 재판부

의문이 생기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위증죄의 죄수(罪數)에 관한 것입니다.

선서한 증인이 같은 기일에 여러 가지 사실에 관해 위증한 경우 이는 포괄하여 하나의 죄(포괄일죄)로 다룬다는 게 대법원 판례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어떤 질문에 대해 위증을 했더라도 그 신문 전체가 끝나기 전에 이를 시정했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나아가 증언 내용이 길어질 경우 한 증인에 대해 며칠을 나눠 신문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신문 전체가 끝날 때까지 하나의 증언으로 판단하는 게 판례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언 내용을 총 6개로 쪼개서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위 내용이 담긴 네 개 증언은 김씨에 한해 유죄로, ‘김병량 캠프 내에서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아 구속되게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김병량이 최철호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는 증언은 김씨가 사실대로 증언했거나 혹은 적어도 자기의 기억에 배치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로 봤습니다.

이처럼 증언을 쪼개서 본 효과는 어디서 나타날까요. 검찰이 위증교사의 가장 강력한 표지로 보고 있는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가 증언 내용과 제대로 연결되지 않게 됩니다.

즉 위에 서술한 통화 내용 전반과 그 뒤의 변론요지서·진술서·증인신문내용 교부 과정, 실제 증언 내용을 종합하면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라는 이 대표의 말은 자기가 원하는 취지의 증언을 해달라는 증언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교사(敎唆)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반면 재판부 논리대로 증언별로 쪼개서 판단하면서 ‘그런 얘기’앞에 있었던 부분, 그러니까 김씨가 ‘김병량 선거 준비로 캠프에 나와 있어서 잘 모른다’ ‘시점이 애매할 수 있다’고 한 대화가 빠져 버리면 별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재판부 논리대로 " ‘그런 얘기’도 했지만 ‘있는 그대로’ ‘안본 걸 얘기할 필요는 없다’도 있지 않느냐”가 돼버리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결론을 정해놓고 판결문을 쓰다 보니 이런 식으로 구성한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검찰이 판결 당일 항소 방침을 밝혔기 때문에 이 사건의 최종 유무죄는 2·3심에서 가려질 전망입니다. 이 대표의 정치적 명운과는 별도로, 판결 자체로도 ‘고의’ ‘죄수’ 등 여러 법률적 쟁점들이 담겨 있고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어서 상급심에서 바뀔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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