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간호사 등 병원 직원들의 당직 및 콜대기(호출 대기) 근무시간이 모두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업무 내용과 밀도 등을 검토해 통상적인 근무와 비슷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근로복지공단 산하 병원에 소속된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 기사 등 298명이 공단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원심 판결을 지난달 14일 이 같은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병원 직원들은 2016년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사측이 상여금, 급식·직급 보조비, 임금 소급 인상분 등을 수당과 퇴직금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다”며 통상임금을 다시 산정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근로자가 받는 수당과 퇴직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는 급여액에 비례하기 때문에, 통상임금이 커질수록 근로자에 이득이 된다.
직원들은 또 당직 및 콜대기 근무를 하며 받은 수당도 당연히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수술실에 배치된 간호사들은 퇴근해 자택에 머물다가 긴급·야간 수술이 잡히는 경우 병원 호출을 받고 즉시 출근하고 그 대가로 수당을 받는데, 이 수당도 통상임금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공단 측은 “당직 및 콜대기 수당은 업무 강도가 현저히 낮고,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법정 수당도 아니다”며 통상임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1심과 2심은 당직 및 콜대기 근무 시간이 모두 근로시간에 해당한다며 그 수당을 통상임금 산정에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당직 및 콜대기 근무는 병원이라는 근무지의 특성상 환자들의 생명 및 건강 유지를 위하여 요구되는 것”이라며 “간호사 등이 당직·콜대기 시 수행한 업무 내용과 양상이 평일 주간의 통상 근무와 다르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당직 근무가 전체적으로 근무 밀도가 낮은 대기성 업무에 해당하는 경우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는 앞선 대법 판례를 인용하며 원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통상 근무 시간에 수행한 업무의 내용이 무엇인지, 통상 근무와 당직·콜대기 근무 사이의 근무 밀도 차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증거와 자료가 없다”며 “당직 및 콜대기 근무시간 전부가 근로시간에 해당하는지, 그중 어느 범위까지 근로시간으로 봐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원심은 이런 사항을 심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매년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임금 소급 인상분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소급 기준일 이후 임금 인상 합의 전까지 임금의 인상 여부나 폭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근로자들은 매년 반복된 합의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면 임금 소급 인상분을 지급받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며 “임금 소급 인상분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부분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파기환송했다. 다만 대법원 관계자는 “통상임금은 사업장, 근로자별로 판단이 달라질 수 있어 개별 사안마다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을 다른 사건에 일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