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중인 헌법재판소에서 ‘내란죄’ 수사 기록을 받아볼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당이 중심이 된 국회 대리인단 측에서 ‘소추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빼겠다’고 한 후 수사기록을 헌재 탄핵심판 자료로 쓰는 데 대한 윤 대통령 측의 반발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지난달 27일 첫 변론준비기일에서 민주당이 중심이 된 국회 소추대리인단이 내란죄를 수사하는 검찰·군(軍)검찰·경찰 등에 문서송부촉탁을 하겠다고 하면서 불거졌습니다. 구체적으로 김용현 전 국방장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등 내란죄로 수사중인 9명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목록, 공소장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야당이 윤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면서 증거자료로 계엄에 대한 언론 보도 60여건만을 냈는데 여기에 수사기록을 받아 추가 증거로 내겠다는 것입니다. 헌재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수사기관에 기록 복사본을 헌재에 내 달라는 ‘인증등본 송부 촉탁’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윤 대통령 대리인단은 3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헌법재판소법 32조에 따라 재판, 수사가 진행중인 사건의 기록을 헌재가 받아 보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 조항은 ‘재판부는 다른 국가기관 혹은 공공단체 기관에 필요한 사실을 조회하거나 기록을 송부하거나 자료제출을 요구할수 있다’고 하면서 단서에서 ‘다만 재판·소추 또는 범죄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해서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한 내용입니다. 헌재가 다른 국가기관·공공기관에 심리에 필요한 자료들을 요구할 수 있게 하되 진행중인 수사·재판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요구 대상에서 수사·재판기록은 뺐습니다.
윤 대통령 측은 의견서에서 “수사기관이 작성한 수사기록에 의존해 탄핵심판을 하면 헌재가 초기부터 유죄 심증을 형성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수사기록의 주 내용은 군·경 지휘부의 일방적인 진술인데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는 점도 문제삼았습니다. 특히 야당이 소추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빼겠다고 하면서 내란죄 수사기록을 헌재 심리 자료로 내달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법이 금지했는데..규칙으로 가능하다는 헌재
하지만 수명법관으로 절차진행을 맡은 이미선 재판관은 3일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헌재가 실시하는 인증등본 송부촉탁은 헌재법 10조 1항, 규칙 39조 1항, 40조 등에 따른 것으로 헌재법 32조 단서 위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 조항은 헌재에 규칙제정권이 있고, 규칙에 따르면 해당 수사기관이 원본을 보내는 게 곤란할 경우 등본(복사본)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정한 내용입니다. 이 재판관은 “청구인(국회)측에서 신청한 수사 기록은 소추 사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심리에 필요한 자료들로써 받아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도 했습니다.
신문 기사만으로 대통령 탄핵 여부를 심리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필요성에서 헌재가 수사기록을 추가로 요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수사 및 재판기록은 요구할 수 없다’고 돼 있는데 규칙으로 할 수 있을까요? ‘원본은 안되지만 복사본은 된다’는 주장도 다분히 형식적입니다. 국민대 법학부 이호선 교수(헌법학)는 “32조 단서 취지가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원본은 안되지만 복사본은 된다는 것은 말장난”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법개정..증거 요건 더 엄격해져
헌재는 앞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도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등에 대한 수사기록을 받아 봤습니다. 당시에도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헌재는 “법원이 공무소 등에 필요한 보관서류의 송부를 요구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272조를 근거로 검찰에 수사기록을 요청했고, 이 기록을 참조해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했습니다.
헌재가 이번에 ‘헌재법 규칙’과 현실적 필요성을 내세워 수사기록을 받기로 결정한 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당시의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때와 크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형사소송법 개정입니다. 과거에는 검찰에서 자백하면 법정에서 부인하더라도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유죄판결을 할 수 있었지만 2021년 1월부터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에도 그 내용을 부인할 경우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와 마찬가지로 증거 사용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법정에서 자백하지 않으면 과거처럼 검찰의 ‘자백 조서’를 쓸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이처럼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인정받는 요건이 더 엄격해졌기 때문에 헌재가 수사기록을 그대로 받아 보는 것은 더 논란이 커질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해 형사재판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먼저 진행되는 헌재 탄핵심판에서 수사서류가 그대로 노출되면 자칫 형사재판이 헌재에서 ‘유죄 심증’이 먼저 형성된 가운데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서울서부지법에 대한 영장 청구, 군사상·공무상 기밀을 이유로 한 영장집행 거부 문구의 배제 등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내란죄를 소추사유에서 빼겠다면서 탄핵 여부 판단에 내란죄 형사사건 기록을 참조한다면 다른 측면의 논란도 생겨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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