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이후 벌어진 법원 집단 난동은 199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사태였다. 간혹 판결에 앙심을 품은 사람이 판사에게 개인적 테러를 시도한 적은 있어도, 여러 명의 군중이 법원에 집단으로 난입해 집기를 부수고 행패를 부린 것은 지난 35년간 없었던 일이다. 특히 정치적 이유가 난동의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법원 청사를 다수의 사람이 부수고 들어온 건 근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매우 엄중히 보고 있다”고 했다.
◇1989년 광주지법 난동 이후 35년 만
1980년대까지는 정치·이념적 이유로 법원에 무단 진입해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1988년 12월 전남대와 조선대생 300여 명은 ‘전두환·이순자 부부 구속’을 외치며 광주지법의 유리창 22장을 화염병·쇠파이프로 부수며 습격했다. 이듬해인 1989년 6월에는 조선대생 500여 명이 광주지법을 다시 습격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던 조선대 학생 이철규씨가 변사체로 발견되자, 화염병과 돌 등을 던지며 광주지법을 기습 점거했다. 이들은 법원 3층 옥상에 올라가 반정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며 농성했다. 그 전에는 1958년 7월 ‘진보당 사건’으로 기소된 조봉암씨에게 재판부가 징역 5년과 일부 무죄를 선고하자, 조씨 반대파로 구성된 시위대 200여 명이 대법원에 난입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들을 제외하면 군중이 법원에 집단 난입해 난동을 부린 사례는 거의 찾기 어렵다. 1997년 8월엔 정신병력이 있던 강모씨가 이완용 후손의 재산권 소송 승소에 불만을 품고, 수원지법 성남지원장실에 난입해 지원장의 팔 등을 수차례 찔렀고, 2007년 1월엔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당시 박홍우 부장판사에 석궁을 쏴 상해를 입혔다. 하지만 이들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특정 판사를 상대로 테러를 한 경우다. 최근엔 2018년 11월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던 한 농민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일도 있었다.
◇검·경 “전원 구속”, 法 “법치 부정”
천대엽 대법원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서부지법 현장을 찾아 “30년간 판사 생활을 하며 이런 상황을 예상할 수 없었고 일어난 바도 없다”며 “법원 내 파손 등이 생각했던 것보다 참혹하다. 중대하고 심각한 중범죄”라고 말했다. 이어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자 중대한 도전으로 용납될 수 없다”며 “심각한 우려와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20일 오전 긴급 대법관 회의를 열고 유사 사태 재발 방지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검·경도 이번 사태에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대검찰청은 이번 사태를 ‘불법 폭력 점거 시위’로 규정하고, 서부지검에 검사 9명 규모의 전담팀을 꾸렸다. 주요 가담자는 전원 구속 방침이다. 경찰은 서부지법에 난입한 86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서울청 수사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경찰청은 전국 지휘부 긴급회의를 연 뒤 “각 시·도경찰청에 향후 불법 폭력 집회에 대해선 단체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부장판사의 신변도 보호 중이라고 했다.
◇尹 “평화적 방법으로 의사 표현 당부”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 대통령은 변호인단을 통해 “국민들의 억울하고 분노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평화적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해주기를 당부드린다”며 “물리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국가적으로는 물론, 개인에게도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여야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런 불법·폭력 행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대통령을 위한 일도 아니다”라며 “시민이 자제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사법 체계를 파괴하고 민주공화국의 기본적 질서를 파괴하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사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내린 결론이 국민적 신뢰를 잃어 법원에 공격이 가해지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신뢰 회복이 절실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