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세 번째 변론에서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혐의와 관련된 핵심 증거들을 조사했다. 민주당이 주도한 국회 측이 형법상 내란죄를 철회하겠다고 한 데 대해 철회 여부를 밝히진 않았지만, 사실상 계엄 당일 있었던 행위가 내란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의 내란 관련 핵심 증거는 크게 네 가지다. 윤 대통령은 이 증거들을 모두 부인했다. 헌재가 핵심 증거들의 사실 관계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갈린다.
①최상목이 받은 ‘비상 입법 기구’ 쪽지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비상 입법 기구’ 쪽지를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회의 예산을 차단하고, 국가 비상 입법 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내용이 적힌 A4 용지 한 장짜리 쪽지인데, 윤 대통령이 직접 준 것이 아니라 실무자가 줬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쪽지를 통해 지시했는지가 불명확한 상황이다. 그러나 국회 측은 “윤 대통령이 계엄 후 국회를 대체할 기구를 만들어 국회의 권능을 침해하려 한 위헌적 행위”라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쪽지를 준 적도 없고, 계엄 해제 후 이런 메모가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 내용이 부정확하고 모순된다”며 “이걸 만들 사람은 국방 장관밖에 없는데 그때 구속돼 있어 확인을 못 했다”고 말했다. 헌재에서 근무했던 현직 판사는 “헌재가 최 권한대행을 증인으로 불러 어느 주장이 맞는지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②“尹 ‘의원 끌어내라’ 지시” 군·경 진술
계엄 해제 후, “윤 대통령이 직접 ‘의원들을 끌어내라’ ‘이재명·한동훈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는 군과 경찰 지휘부의 증언이 쏟아졌다. 이들이 국회 등에서 말한 내용이 국회 회의록에 담겼고, 헌재는 이 회의록을 증거로 채택했다. 하지만 지시를 내렸다는 윤 대통령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 등 직접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국회 측은 “윤 대통령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막으려고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윤 대통령 측은 “법조인·정치인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적이 전혀 없다. 황당한 가짜 뉴스를 탄핵소추 사유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법조인은 “윤 대통령이 핵심 증거들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헌재가 내란 행위에 대한 사실관계를 엄밀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③국회·선관위에 투입된 軍 CCTV 영상
국회 측은 계엄 당일 국회·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이 투입돼 활동한 현장 CCTV 영상을 핵심 탄핵 증거로 제시했다. “국회와 선관위에 군·경을 투입해 장악하려 한 것이어서 명백한 ‘국헌 문란’ 행위”라는 게 국회 측 주장이다. 이날 재판에서도 국회 본관과 선관위 청사 등의 CCTV 영상 16개를 틀었다. 영상에는 계엄군이 탑승한 헬기 3대가 국회 뒤편 운동장에 착륙하는 모습, 국회 본관 유리창을 깨뜨리는 모습, 선관위 서버를 촬영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영상을 본 윤 대통령은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했는데 직원들이 저항하니까 스스로 나오지 않았느냐”며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활동을 방해하려 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것에 대해선 “선관위 전산을 점검한 결과 문제가 많아 스크린하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④‘정치 활동 금지’ 등 담긴 포고령 1호
국회와 정당의 정치 활동 금지 등의 내용이 담긴 포고령 1호도 핵심 증거 중 하나다. 국회 측은 “계엄 선포 시에도 국회의 권한은 제한할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를 침해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 제거하려 한 것”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 측은 이날 “김 전 장관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 포고령 예문을 그대로 필사한 것을 대통령이 몇 자 수정했다”며 “정상적인 국회 활동을 금지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이 실수로 넣은 ‘정치 활동 금지’ 조항을 윤 대통령이 부주의로 간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장관 측은 “대통령이 직접 수정, 보완을 지시했고 최종 승인도 했다”고 말한다. 포고령 역시 누구의 책임인지, 엇갈리는 주장 외에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증거에 대해 헌재가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할지에 따라 윤 대통령 탄핵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탄핵심판에선 형사 법정처럼 까다롭게 증거와 사실관계를 따지지는 않는다”며 “위헌·위법을 둘러싼 양측 주장 중 어느 것이 더 개연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