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공수처 수사관들과 경찰 인력이 3차 저지선을 뚫고 관저로 향하고 있다./뉴스1

‘12‧3 비상계엄’ 수사는 초기부터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중 어느 수사기관에 내란죄 수사권이 있느냐로 논란을 빚었다.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더 이상 내란죄를 직접수사할 수 없게 됐다. 비슷한 시기 출범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내란죄는 수사 개시 범죄가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1차 수사해 송치하면, 검찰이 보완수사를 거쳐 피의자를 기소하는 게 법과 원칙에 부합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뿐 아니라 검찰과 공수처 3개 기관이 모두 수사에 뛰어들었다. 검찰은 수사 대상인 경찰이 내란의 공범이어서 윤 대통령 등 다른 피의자도 수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고, 공수처는 대통령 직접 수사가 가능한 직권남용의 관련 범죄로서 내란죄도 수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졸속으로 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의 회색 지대(Gray Zone)’ 탓이었다.

이런 부분은 결국 법원이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해줘야 했고 실제 그럴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도,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도 모두 발부해줬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공수처가 경찰과 검찰 사건까지 넘겨받아 사실상 독자적으로 진행했지만 법원은 이를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회색 지대에서 흑백을 가려줘야 할 법원이 ‘대통령을 빨리 수사하라’는 여론 압박에 휘말려 혼란을 부추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수사에 욕심을 낼수밖에 없는 수사기관에 대해 판사들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수사권을 정리해줬다면, 윤 대통령 등 피의자 측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법적 혼란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법원 스스로 수사권 논란의 빌미를 키운 것”이라고 했다.

◇‘입법 난맥’ 중심 잡아줘야 할 법원이 제 역할 못해

윤석열 변호인단 소속인 윤갑근 변호사는 23일 공수처가 윤 대통령 사건을 검찰에 다시 송부하자 “(윤 대통령 체포 및 구속은) 수사권 없는 기관이 관할권 없는 법원에서 받은 불법영장을 집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 수사의 불법성을 지적한 것인데, 법원도 처음에는 공수처나 검찰이 아닌 경찰에 수사권이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작년 12월 9일 국회에서 “(내란죄는 검찰의 수사가) 가능한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다”면서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남천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청구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면서 “(내란죄는) 검사도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의 공범 중 한 명인 조지호 경찰청장 등 경찰공무원 범죄는 검사가 직접수사를 할 수 있어 검찰에 이번 사건 수사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공수처가 공수처법상 이첩요구권을 들어 경찰과 검찰에서 차례로 사건을 가져오면서 윤 대통령 수사를 독자적으로 하게 됐다. 공수처는 내란죄를 직접 수사할 수 없지만, 수사가 가능한 직권남용의 관련범죄인 내란을 수사할 수 있다는 논리를 댔다. 법조계에서는 “법정형이 징역 5년 이하인 직권남용을 내세워 최대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내란죄를 수사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법원은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공수처 손을 들어줬다.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인 이순형‧신한미 부장판사는 작년 12월 31일과 지난 7일 공수처가 청구한 윤 대통령에 대한 1‧2차 체포 및 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같은 법원의 차은경 부장판사도 지난 19일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공수처의 수사권을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공수처가 공수처법상 ‘원칙’인 서울중앙지법 대신 서울서부지법을 선택해 ‘판사쇼핑’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지만, 당초 경찰에 수사권이 있다고 한 천대엽 처장은 윤 대통령이 구속된 다음 날 국회에 다시 나와 “결국 개별적인 재판 사항이고, 사법질서에 따른 재판 자체는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판사가 개별적으로 수사권과 관할권을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백지예 대법원 재판연구관(판사)은 지난 17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직권남용죄는 현직 대통령 소추 대상이 아니라며 “관련범죄(직권남용)의 명목으로 공수처의 권한이 아닌 내란죄를 수사하면 본말이 전도된 논리”라고 했다.

임병열 청주지법원장도 백 연구관 글에 대한 댓글로 “검찰에서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공수처에서 청구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들은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인가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