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장관급)이 아들의 지역 선관위 채용 과정에서 면접위원을 자신과 친한 사람으로 교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이 면접위원은 다른 면접위원에게 지원자가 김 전 총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렸고, 아들은 최종 합격했다. 김 전 총장은 아들이 지역 선관위에 채용된 이후 상급 기관으로 옮길 때도 부하 직원에게 “아들을 챙겨봐 달라”고 지시했으며, 아들이 마음대로 임차 계약한 오피스텔을 선관위가 ‘관사’로 승인해 월세를 내도록 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선관위의 ‘부자(父子) 세습' 비리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절친한 면접위원 교체해 아들 채용
김 전 총장은 작년 12월 직권남용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법무부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실에 제출한 김 전 총장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총장은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이던 2019년 11월 인천시선관위가 공고를 하기 전에 경력 직원 채용을 진행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당시 인천시선관위 총무과장에게 전화해 “공고문, 계획서가 있으면 보내달라” “이번에 우리 아들이 응시하려고 하니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김 전 총장은 응시 원서와 자기소개서 양식 등을 미리 받았다.
김 전 총장 아들이 지원서를 제출하자, 인천시선관위 관계자들은 지원자가 누구인지 파악했다고 한다. 인천시선관위는 공정성을 위해 외부에서 면접위원을 선임할지 논의했지만, 최종적으로 중앙선관위 의견에 따라 내부 사람들로 면접위원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후 김 전 총장은 인천시선관위 총무과장을 만나, 자신과 친한 인천시선관위 선거과장을 면접위원에 포함하라고 지시했다. “(선거과장한테) 나에게 전화하라고 해”라는 말도 했다.
선거과장은 그해 12월 진행된 면접 과정에서 다른 위원들에게 “김씨에 강화 출신에 중앙선관위 직원이면 누구겠어”라며, 응시한 사람이 김 전 총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김 전 총장 아들은 최종 합격해 2020년 1월부터 인천시선관위 산하인 강화군선관위에서 근무했다.
◇채용 후에도 계속되는 ‘아빠 찬스’
김 전 총장 아들의 선관위 채용 이후에도 ‘아빠 찬스’는 계속됐다. 김 전 총장은 2020년 11월 인천시선관위 총무과장에게 “아들이 외부 교육을 마치면 강화군선관위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인천시선관위로 전입할 수 있게 챙겨봐 달라”고 했다. 앞서 인천시선관위는 그해 7월 강화군선관위에서 최소 3년간 일해야 상급 기관인 인천시선관위로 전입을 신청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천시선관위 총무과장은 부하 직원에게 전입 지원 자격을 ‘근속 3년’에서 종전의 ‘근속 1년’으로 낮추라고 지시했다. 2020년 1월부터 강화군선관위에서 일한 김 전 총장 아들이 전입을 지원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김 전 총장 아들은 그해 12월 지원자 네 명 중 2순위로 선발됐다.
◇오피스텔 월세도 선관위가 지급
김 전 총장은 아들의 전입 심사가 시작되기 전인 2020년 11월 말 인천시선관위 총무과장에게 “(아들이 입주할) 관사를 하나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지시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강화군에서 인천 시내까지 출퇴근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인천시선관위에 빈 관사가 없다는 보고를 받은 김 전 총장은 중앙선관위 시설과장에게 전화해 “인천시선관위에 관사를 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김 전 총장 아들은 중앙선관위가 관사 추가 배정을 결정하기 전인 그해 12월 25일 자신의 명의로 오피스텔 임차 계약부터 체결했다고 한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5만원 조건이었다. 계약서에는 ‘월세는 인천시선관위에서 지급한다’는 특약 조항도 넣었다. 사흘 뒤 김씨는 인천시선관위 총무과를 찾아가 계약서를 주고, ‘임차 관사’ 배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중앙선관위 승인을 받은 인천시선관위는 12월 29일 임차인 명의를 인천시선관위로 바꾸고는 김씨의 계약을 인수했다. 이 오피스텔은 선순위 근저당 8400만원이 설정된 ‘위험 매물’이었다. 보증보험 가입이 어렵고 이후 보증금을 챙기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중앙선관위를 거쳐 관사로 사용하는 것이 승인된 것이다.
주진우 의원은 “선관위 부정부패의 끝을 보여준 사례”라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비리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