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 심판 선고 시점에 대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11일 밝혔다. 헌재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보다 먼저 탄핵 심판이 종결된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선고는 오는 13일 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달 19일 변론을 종결하고 3주가 다 된 한 총리 사건 선고 일정은 아직까지 밝히지 않고 있다.
한 총리 측 변호인단은 지난 10일 헌재에 “한 총리 탄핵 심판을 윤 대통령 탄핵 심판보다 먼저 선고해야 한다. 조속히 선고 기일을 지정해 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정부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한 총리의 신속한 권한대행 복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韓 복귀해 트럼프 행정부에 대응해야”
정부 내에서는 글로벌 관세 전쟁에 대한 전략적 대응과 ‘정상 외교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한 총리의 복귀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 총리는 김대중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총리를 역임한 데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 대사를 지냈고, 이 기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진행부터 미 의회의 비준까지의 과정을 책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과도 직접 소통하는 사이다. 한 총리는 야당의 탄핵소추로 직무 정지되기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 측근에게 직접 연락해 곧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평가와 정책 기조를 직접 파악해 정부 내에서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상목 권한대행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부총리·장관급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대통령·총리가 수행하는 정상 외교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최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2개월이 돼 가도록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도 못 했고, 지난달 28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하고 화상 회담만 한 상황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한 총리는 정상 외교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만큼, 정상 외교와 국정 안정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직무에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
◇”韓 선고 지연은 헌재가 정치하는 것”
변론이 종결된 순서로 봐도 한 총리 탄핵 심판은 이미 늦어졌다. 한 총리 탄핵 심판은 이 지검장 등 검사 3명의 탄핵 심판이 종결된 지난달 24일보다 앞선 19일 종결됐고, 같은 달 25일 종결된 윤 대통령 사건보다 6일 먼저 끝났다.
법조계에서는 한 총리 탄핵 심판 선고가 늦어지는 데 대해 “헌재가 정치적 고려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먼저 종결된 사건부터 선고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며 “선고 시점을 두고 헌재가 정치적 고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총리의 핵심 탄핵소추 사유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묵인·방조했다는 것인데, 한 총리가 먼저 기각될 경우 윤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대한 판단이 논란이 될 수 있어서 헌재가 시점을 조절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한편 헌재는 한 총리를 탄핵하면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결 정족수를 대통령 기준(200석)이 아닌 국무위원 기준(151석)으로 결정한 데 대한 권한쟁의 사건도 미뤄두고 있다. 이 사건이 위헌으로 결론 나면 한 총리 사건은 각하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쟁점 간단해 뜸 들일 이유 없다”
한 총리의 탄핵소추 사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행위 공모·묵인·방조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거부 △내란 상설 특검 임명 회피 △김건희 특검법 등 거부 △여당과 ‘공동 국정 운영’ 시도 등 5가지다. 이 중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한 총리의 파면 여부를 판단할 유의미한 쟁점이 되지 못한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헌재는 지난달 19일 첫 변론에서 증인 신문도 없이 90분 만에 변론을 종결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 보류 문제도 최 권한대행 관련 사건으로 “국회의 선출권을 침해했다”고 이미 결론 냈다. 결국 재판관 임명 보류가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지 여부만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한 총리 사건은 증인도 없고 쟁점도 간단하다. 더 뜸 들일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한 총리 사건을 윤 대통령 사건과 같은 날 선고할 수도 있다”며 “재판부에 달린 사항이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