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부산지법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건설업체 대표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하기로 했다. 사진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하루 전인 2022년 1월 26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확장 공사 현장에서 안전모를 쓴 참석자들이 안전 결의문을 낭독하는 모습. /오종찬 기자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위헌 심판을 청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사건 관련자의 헌법 소원은 있었지만, 법원이 이 법의 위헌성을 직접 지적하며 위헌 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2년 1월 시행된 이 법은 3년 넘게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지법 형사4-3부(재판장 김도균)는 최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는 부산 지역 한 건설업체 대표 박모씨가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인용한 것으로 28일 전해졌다. 재판부는 “이 사건 신청 법률 조항은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 책임주의·평등 원칙, 명확성 원칙에 반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박씨의 재판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중단된다.

그래픽=양인성

박씨가 기소된 사고는 2022년 3월 부산 연제구 한 업무 시설 신축 공사장에서 발생했다. 박씨가 대표로 있는 건설 회사에서 주차 타워 내부 단열 공사를 하청받은 하청업체 근로자가 작업 도중 설비에 끼어 숨졌다. 이 사고로 원청 사업주인 박씨는 이듬해 5월 재판에 넘겨졌고,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박씨는 항소심 선고를 앞둔 작년 8월 자신에게 적용된 법 조항(4조 1항 1호·5조·6조 1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중대재해법 4조 1항 1호는 사업장의 업주와 경영 책임자에게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조치 책임을, 5조는 원청업체의 하청업체에 대한 예방 책임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6조 1항은 이런 의무를 어겨 근로자가 숨졌을 때 1년 이상(최장 45년)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 이행하라는 4조 1항 1호는 어떤 재해를 예방하라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그 구체적 의미를 대통령령에 전적으로 위임하고 있다. 명확성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했다. 또 “5조는 전문 기술과 경험이 부족한 원청 업체가 전문성을 가진 하청 업체에 업무를 맡긴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중대 재해에 관해 (원청 사업주에게) 가혹할 정도의 형사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6조 1항의 형량에 대해선 “재해 발생에 책임이 있는 하청 소속 근로자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원청 사업주는 훨씬 중한 처벌을 받는다”며 “책임주의·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징역 7년 이하 또는 1억원 이하 벌금) 대상 행위와 별 차이가 없는데 형량만 대폭 올려 균형성을 잃었다는 지적도 담겼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점점 자본화·거대화하는 산업계에서 기업 경영자가 전 사업장의 모든 공정을 세세하게 알기 어렵고 설령 전문적·기술적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모든 공정을 직접 통제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경영 책임자 등에게 엄혹한 형사 책임을 계속 추궁한다면 유능한 경영자를 현장에서 축출하거나 사업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고 근로를 제공할 사업장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며 “오히려 근로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와 중대재해법 입법 목적 자체를 붕괴시키게 된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산업계가 호소하던 난점을 그대로 지적한 셈이다.

작년 1월 법 적용 대상 범위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5~49인 사업장으로 확대되면서 중소기업들까지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임원을 대표자 자리에 앉히는 대신 연봉을 올려주겠다는 중소 건설사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업인들은 자칫 처벌될까 불안에 떨고 있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반응”이라며 “중대재해법은 폐지하거나 ‘처벌 중심’이 아닌 ‘예방 중심’으로 고쳐야 한다”고 했다.

산업 현장에선 작업 일지나 안전성 평가 자료 등 수십 종류의 안전·보건 서류를 준비하는 데 드는 부담도 늘었다. 안전 관리자들이 서류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현장 시설물이나 근로자 안전을 점검할 시간이 줄었다는 곳도 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대재해법은 중소기업의 현실과 유리된 측면이 많아 경영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의 예방 규정만으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외국 기업들 사이에선 “인건비가 비싸고 구인난도 심각한데 과도한 규제까지 겹치니 한국에 굳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은 지난 24일 열린 ‘외국인 투자 전략 회의’에서 “한국 정부에 대표이사 책임 문제에 관한 규제 완화 필요성을 건의하고 있다”고 했다.

대형 인명 사고를 예방하겠다던 법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반응도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 능력 평가 상위 20위 건설사 공사 현장에서 숨진 근로자는 35명으로, 이 법이 처음 시행된 2022년(33명)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앞서 작년 4월 중기중앙회와 중소기업인 등도 중대재해법 적용 범위(3조)와 사업주의 조치 의무(4조), 형량(6조 1항)을 규정한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냈다.

한편, 중대재해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 소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 과거 해당 조항이 적용된 사건까지 소급해서 효력을 잃게 된다. 이럴 경우 이미 이 법으로 처벌받은 사업주 등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위헌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는 중대재해법 관련 재판은 계속되고, 검찰의 수사와 기소도 계속 진행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산업 현장에서 사망 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법으로, 2022년 1월 시행됐다. 당초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했지만, 작년 1월 27일부터 5∼49인 사업장까지 범위가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