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열렸다. /뉴스1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계엄 선포 요건, 국회에 대한 군경 투입, 포고령 1호 발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 등 윤 대통령에 대한 5가지 탄핵 사유를 모두 인정하면서 헌재의 판단을 차례로 밝혔다. 특히 문 권한대행은 법 위반 행위의 중대성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후 군경을 투입시켜 국회의 헌법상 권한 행사를 방해한 것은 그 자체로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다”고 했고, “국회가 신속하게 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 덕분이었다”고 했다.

4일 오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열렸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 요지를 읽자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표정이 굳어졌다. 고개 숙인 대리인도 보인다. /김지호 기자

◇“계엄 당시 비상사태 아니었다”

헌재는 작년 12월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법률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계엄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현실적으로 발생했을 때만 가능하다”며 “계엄 선포 당시 국회에서 탄핵 심판 절차가 진행 중인 공직자는 검사 1명과 방송통신위원장에 불과했고, 야당 단독으로 처리한 법안 역시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감액 예산안도 본회의를 통과하진 않은 상황이었다”고 했다. 비상사태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헌재는 또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계엄 선포 취지를 간략히 설명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고, 단 5분 만에 회의가 끝났다”며 계엄 선포 절차도 지적했다.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계엄법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계엄을 선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尹, 의원들 끌어내라 지시해”

헌재는 대통령이 위헌·위법하게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 활동을 방해했다고 봤다. 특히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를 의결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모여들자 윤 대통령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인정했다.

곽 전 사령관은 변론 기일에서 “대통령이 ‘의원’이라고 한 적은 없다. ‘인원’으로 기억한다”며 말을 바꿨는데도, 헌재는 “끌어내라는 대상이 국회의원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대통령의 행위는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과 불체포특권,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대의 민주주의와 권력 분립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했다.

◇“포고령 1호, 정치적 기본권 침해”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부가 발령한 포고령 1호에 대해서도 헌재는 “국회·지방의회·정당 활동을 금지해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과 단체행동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했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제한했다”며 “헌법의 근본 원리인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 포고령에는 ‘국회 활동과 일체의 정치적 활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포고령 초안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작성했지만, 최종 승인은 윤 대통령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법부·선관위 독립성 침해해”

헌재는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을 통해 주요 법조인과 정치인 위치를 파악하려고 시도한 점도 탄핵 인용 사유로 인정했다. 체포 목적의 위치 파악이었다는 것이다. 헌재는 “현직 법관들이 언제든 행정부에 의해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력을 받을 수 있다”며 “사법권 독립의 제도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홍 전 차장은 변론 기일에서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권순일 전 대법관 등 법조인과 정치인 이름이 포함된 체포 명단을 받았다”고 진술하면서 이른바 ‘홍장원 메모’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후 일부 거짓말이 드러나 신빙성 논란이 불거졌는데, 헌재는 그의 증언과 증거를 대부분 인정했다.

헌재는 ‘부정선거 의혹’을 이유로 중앙선관위에 계엄군을 보낸 것에 대해서도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한 것으로, 영장주의에 반하며 선관위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계엄군 300여 명은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 수원 선거연수원, 서울 관악청사 등에 출동해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출입을 통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 횡포 인정하면서도 “계엄은 위법”

헌재는 ‘줄탄핵’ ‘예산액 삭감’ 등 야당이 다수 의석을 내세워 윤 대통령 임기 동안 횡포와 전횡을 일삼은 부분도 인정했다. 헌재는 “(정부의) 주요 정책들은 야당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고, 야당은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들을 일방 통과시켰다“며 “(대통령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된다고 인식해 이를 어떻게든 타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헌재는 “야당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되도록 했어야 하는데,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계엄으로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