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재판관 임명은 사실상 무산됐다. 이에 따라 헌재는 당분간 7인 체제로 운영되고, 6월 3일 대선 후 차기 대통령이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두 재판관의 후임자를 지명, 임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유력한 후보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야당은 행정부와 입법부, 헌재까지 장악하게 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헌재 “권한대행의 임명권 단정 못해”
헌재는 이날 결정문을 통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임명할 수 있다고 단정하지 못한다”며 “가처분을 인용했다가 본안에서 기각됐을 때의 불이익보다, 가처분을 기각한 뒤 본안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졌을 때 발생할 불이익이 더 크다”고 밝혔다. 헌법은 ‘법률에 정한 자격과 절차에 따른 법관’에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 헌법재판관 임명이 강행되면 재판 당사자들이 그 권리를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긴급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인정했다. 헌재는 “국회 인사청문회 없이,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안을 제출한 날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 사건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이들이 관여한 최종 결정은 재심이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며 “가처분 인용으로 손해를 방지할 긴급한 필요가 인정된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소원이 적법한 심판 요건을 갖췄는지 등은 판단하지 않고 오로지 한 권한대행의 임명을 막기 위해 ‘요식적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상겸 동국대 로스쿨 교수는 “권한대행으로서 대통령 권한을 행사한 것은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이런 식이면 국가 기관의 모든 권한 행사가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고 했다.
◇대선 결과 따라 헌재 구성도 달라져
현재 헌재의 재판관 구성은 진보 4명, 중도 3명, 보수 2명으로 구성돼 있다. 문형배·이미선·정계선·마은혁 재판관은 진보, 정정미·김형두·김복형 재판관은 중도,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돼 왔다. 한 권한대행이 지명한 두 후보자가 임명될 경우 보수 성향 재판관이 많아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날 헌재의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헌재의 재판관 구성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지게 됐다. 여당이 재집권할 경우 보수 성향 재판관 2명이 추가되지만, 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진보 성향이 다수인 현재 구도가 유지된다. 특히 정정미 재판관은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 인용 의견을 내는 등 그동안 진보 성향의 결정을 여러 차례 해온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재판관 과반이 진보 성향으로 채워지게 되는 셈이다.
◇법조계 “이재명 형사재판 중단도 우려”
법조계는 야권 대통령이 당선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180석이 넘는 국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행정부에 이어 헌재마저 야당 성향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학장은 “민주당이 정권까지 잡게 되면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한 몸이 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과 견제 기능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했다. 이인호 중앙대 로스쿨 교수도 “헌재가 정파에 따라 결정을 내는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대장동 사건’ 등 5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데,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이들 재판이 중단돼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다. 대통령 재임 중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 형사상 소추(訴追)를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른바 ‘헌법 84조’ 논란이다. 이 문제도 이 전 대표가 대통령이 돼 임명한 재판관들이 이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헌재가 헌법 84조 해석을 이 전 대표 입맛에 맞게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형사재판까지 중단되면 사실상 법원도 이 전 대표를 견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