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영문 이름이 로마자 표기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영문명 변경 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는 최근 A의 부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불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원고 A씨는 2020년 10월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아동으로, A씨의 부모는 2023년 8월 자녀의 여권을 신청하면서 원고의 이름 중 ‘태’ 자를 ‘TA’로 적었으나, 발급 업무를 수행한 수원시 측은 해당 표기가 로마자 표기법에 어긋난다며 ‘TAE’로 바꿔 여권을 발급했다.
A씨의 부모는 “이름의 실제 발음이 신청한 로마자 표기법에 가깝다”며 여권 로마자 성명을 원래 신청한 대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피고는 여권법 시행령에 따른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불가 처분을 통지했고, A씨의 부모는 2023년 11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구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는 대한민국 여권에 대한 대외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한 취지에서 로마자 변경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나아가 변경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범죄 등에 이용할 가능성을 고려해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며 로마자 성명 변경에 제한을 두는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원고가 변경을 신청한 로마자 성명이 로마자 표기법과 다소 다르다고 해도 대한민국 여권에 대한 대외 신뢰도 확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라거나 범죄 등에 이용할 것이 명백하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라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된 한글 이름이 로마자로 표기되는 외국식 이름과 음역이 일치할 경우 외국식 이름을 여권의 로마자 성명으로 표기할 수 있다”며 “외국식 이름에서 ‘A’는 [a]로 발음하기도 하지만, [æ]로 발음하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식적으로도 ‘cap(캡)’, ‘nap(냅)’, ‘fan(팬)’ 등 모음 ‘A’를 ‘æ’로 발음하는 단어를 무수히 찾을 수 있다”라고 예시를 들었다.
재판부는 각주를 통해 여권의 로마자 성명 변경 사유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2018년 4월 ’18세 미만일 때 사용한 여권상 로마자성명을 18세 이후 계속 사용 중인 경우로서 동일한 한글성명을 로마자로 다르게 표기하려는 경우‘가 신설됐고, 2021년 7월 ’해외이주를 위하여 여권의 로마자성명을 해외이주 입국사증의 로마자성명과 일치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 ’같은 로마자성명을 가진 사람이 외국에서 입국규제 대상으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가 각 신설됐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