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복 차림의 판사가 선고를 내리는 모습./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피고인은 외국인으로서 일정 금액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경우 강제출국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창원지방법원 형사1부(재판장 이주연)는 작년 12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외국인 피고인 A씨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벌금을 900만원에서 290만원으로 낮췄다. 외국인들이 3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한국 밖으로 쫓겨나는 ‘300만원의 벽’을 고려해 내린 판결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재작년 외국인 주민 수는 246만명으로 총인구 대비 4.8%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20만명 늘어난 수치로, 증가율(8.9%) 역시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국내에 외국 출신 거주자가 늘어나면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외국인들도 오름세다. 대법원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외국인 형사사건 건수는 2014년 3751명이었으나, 2019년 5000명대를 돌파해 꾸준히 올라 2023년엔 5854명을 기록했다. 상고심까지 간 건수도 2023년 476건을 기록해 10여년 전에 비해 약 2배 증가했다.

외국인들은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국내법을 적용받지만, 처벌 정도에 따라 자칫 한국에서의 삶이 위협받을 수 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내부 지침인 ‘벌금형 확정 외국인 심사결정 기준’이 300만원 이상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이상 형을 받은 외국인을 출국조치대상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사건을 전담하는 법률사무소 어스의 백수웅 변호사는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가족이 있을 경우 인도적 사유를 고려하긴 하지만, 그래도 집행유예 이상이 나오면 출국 명령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특히 마약류나 성범죄는 기소유예만 나와도 출국 명령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탓에 외국인 사건은 출국 명령이 나오지 않을 만큼의 형량을 받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한국에서 삶을 꾸려나가고자 하는 외국인들은 피해자와 합의해 처벌불원서를 받아내거나, 한국에 남고 싶다는 내용을 담아 반성문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형을 깎는다. 법무법인 마중의 김주형 변호사는 “해당 기준이 법무부 내부 지침이라 형사 담당 재판부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사정이 있다는 걸 재판부에 알리고, 잘못은 인정하지만 쫓겨날 경우 가족결합권 등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주로 설득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출입국관리소가 출국명령 처분에 폭넓은 재량권을 가지는 만큼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실무를 진행하다보면 벌금이 300만원 미만인데도 출국 명령이 나오거나, 반대로 집행유예가 나왔는데 출국 명령을 면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이런 탓에 적은 벌금형을 받고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재판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앞서 감사원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감사원은 2021년 펴낸 ‘외국인 출입국 등 관리실태 보고서’에서 “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 강제추행 등의 성범죄로 벌금형이 선고된 외국인 281명 중 177명은 출국조치됐으나, 30명은 국내에 계속 체류하도록 허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었다. 이어 “출입국·외국인 관서별로 유사한 범죄행위에 대한 출국조치 여부가 다르게 처리되고 있어 범죄행위에 대한 제재 처분의 일관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