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도 본사도 전남에 있는데 왜 서울에서 회생 신청을 하셨는지…”

전남 장성에서 산업용 포장 공장을 운영하는 A사 간부가 최근 법원의 회생 심사 과정에서 판사에게 받은 질문이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살려야 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관할 법원인 광주지법이 아닌 서울회생법원에 ‘법인 회생’ 신청을 하자 재판부가 의아해서 물은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A사는 지난해 핵심 협력사가 도산하면서 200억원 규모 대금을 돌려받지 못해 위기를 맞았다. 최근 서울 노원구의 5층짜리 상가 건물 한 칸에 사무소를 등록하고, 이곳 주소로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신청을 했다. A사 관계자는 “수도권 거래처를 만나 정상화를 하겠다고 설득하려고 사무실을 얻었고,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회생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기업 회생이나 파산을 위해 서울회생법원을 찾는 지방 기업들이 늘고 있다. 도산 사건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법원인 서울회생법원의 처리 속도가 지방법원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급히 서울에 영업소나 지점을 만들어 관할을 옮겨 법인 회생을 시도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영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사업을 정리하거나 구조 조정을 하기 위한 눈물의 ‘위장 전입’인 셈이다.

법인 회생은 빚 갚을 여력이 떨어진 기업이 재기할 수 있도록 법원 관리하에 부채를 조정하는 절차다. 회생에 실패하면 파산 절차에 들어간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원행정처에서 받은 ‘법원별 법인 회생 사건 처리 기간’을 보면, 접수 후 개시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서울회생법원은 한 달이 채 안 걸린 반면 제주지법은 두 달, 전주지법은 세 달 가까이(87일) 소요됐다. 법원마다 최대 3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충남 당진의 운송 장비 제조 업체 B사도 최근 서울 강동구에 영업소를 차리고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신청을 했다. 3월 5일 신청서를 제출해 29일 만에 회생 절차가 개시됐다. 충북의 한 합판 제조 업체도 지난 3월 같은 방식으로 서울에서 43일 만에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이렇다 보니 전국의 법인 회생 신청 사건 가운데 서울회생법원의 비율은 2023년 31%, 2024년 32.7%, 올해 1분기 33.6% 등으로 매년 늘고 있다.

법원의 신속한 회생 개시 결정은 기업 입장에선 존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안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임차료와 세금, 숙박비 등 비용을 더 내면서까지 서울행을 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산 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채무 기업이 경매 등 강제 집행을 당하지 않게 막는 ‘포괄적 금지 명령’만 해도 서울에선 1~2일 만에 내려지는데 지방에선 일주일 이상 늘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이 응급 환자라면, 일주일이 지나 산소 호흡기를 씌워주는 셈”이라고 했다.

각 지방법원에도 도산(회생·파산) 업무를 담당하는 재판부가 있지만, 법관과 담당자가 많고 체계화된 시스템을 갖춘 서울회생법원과는 차이가 크다. 서울회생법원은 ‘실무 준칙’에서 첨부 서류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선 재판부마다 요구 자료가 제각각이어서 불편하다는 게 기업들의 불만이다. “지방에선 사업을 정리하는 것도 힘들다”는 말까지 나온다.

현재 회생법원은 서울과 수원, 부산에 있고, 내년 대구와 대전, 광주에 추가로 생길 예정이다. 도산 전문 조은결 법무법인YK 변호사는 “경기 악화에 지방 소멸 현상까지 겹쳐 경영 위기를 맞는 지방 기업들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며 “회생법원을 전국 각지로 확대하고, 지방법원에도 도산 사건 관련 실무 준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