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8일 실시되는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서 ‘문과 불리, 이과 유리’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문·이과 계열 구분 없이 수학 등급을 산출하면서 상대적으로 수학에 취약한 문과생이 불리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지난 3월 25일 문·이과 통합형으로 처음 치러진 ‘고3 연합모의평가' 표본 분석 결과 문과생이 수학 과목에서 이과생에게 밀려 낮은 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문과 계열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구조적으로 ‘문과 폭망(폭삭 망하기)’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수학 1등급’ 중 문과생 7.5%
지금까지 수능에서 문·이과생은 국어·영어만 공통으로 치르고, 수학과 탐구 영역은 각자 진로에 맞춰 따로 시험을 봤다. 이 때문에 수학의 경우 문과생은 문과생끼리, 이과생은 이과생끼리 등급과 점수를 매겼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문·이과생이 함께 수학 ‘공통 과목’ 시험을 보고 각자 선택에 따라 ‘확률과 통계’ ‘기하’ ‘미적분’ 세 과목 중 하나를 치러야 한다. 보통 문과는 ‘확률과 통계’, 이과는 ‘미적분’ 또는 ‘기하’를 택한다. 등급과 점수는 문·이과생 모두를 모(母)집단으로 해서 매긴다.
14일 전국진학지도협의회가 지난 3월 자체 출제한 고3 연합모의평가 수험생 9457명의 점수를 표본 분석한 결과, 수학 1등급(상위 4% 이내)을 받은 학생 가운데 92.5%가 이과 학생인 것으로 조사됐다. 문과 학생 비율은 7.5%에 불과했다. 수학 2등급(상위 4~11%)도 81.4%가 이과생이었다.
응시생 평균 점수도 차이가 컸다. 수학 ‘공통 과목’에서 문과생은 평균 33.11점(74점 만점)을 받았지만, 이과생은 48.22점이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문과생보다 수학 수업이 많은 이과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도입된 ‘선택 과목에 따른 표준점수’ 제도에 따라 선택 과목의 문·이과 격차도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이 제도는 상대적으로 학습 내용이 어렵고 학습 분량이 많은 선택 과목에 일종의 ‘보상 점수’를 주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습 부담이 적은 선택 과목으로만 쏠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도입했다. 수학에서는 ‘확률과 통계’보다 ‘미적분’이나 ‘기하’를 더 어렵고 부담이 큰 과목으로 보기 때문에, 주로 이과생이 선택하는 미적분·기하 과목이 더 높은 표준점수를 받는다. 이번 표본 조사에서도 똑같은 원점수 100점을 받은 문과생(확통 선택)의 표준점수는 141점이었지만 미적분을 선택한 이과생(미적분)의 표준점수는 143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과생은 벌써부터 불안
문과 수험생들의 불안감은 크다. 수험생 인터넷 사이트에는 “문들문들(문과 부들부들)하다” “문과생이 무슨 죄냐, 너무 무섭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상경 계열을 지망하는 고3 수험생 한모(18)양은 “벌써 애들 사이에서 ‘올해 1등급 맞긴 다 틀렸다’고 말하는 애들이 많다”며 “처음 통합형 시험을 쳤는데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반대로 이과생들 사이에서는 “수학에서 안정적인 등급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입시계에서는 올해 수시 모집에서 문과생이 수능 최저 등급 요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컨대 고려대 학생부종합 학업우수전형에서 인문계는 국어·수학·영어·탐구 4개 영역의 등급 총합이 7 이내여야 하는데, 수학에서 3등급을 받을 경우 반드시 나머지 3개 영역 중 2개 이상에서 1등급을 받아야 한다. 1개라도 3등급이 나오면 안 되는 것이다. 백상민 경북 문명고 수학 교사는 “문과생들은 수학 이외 과목에서 확실한 등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시에서도 수학 공통 과목에 더 집중해서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는 “대학에서 문과생의 수능 최저 등급 요건을 완화해주는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모든 게 ‘깜깜이’ 상황인 만큼 교육 당국이 학력 평가 통계를 투명하게 공개해 수험생들이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