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출근하는 직장인들. /뉴스1

경남 김해에 있는 항공기 부품 제조 업체 케이피항공산업은 올해 초 항공 부품 자동화 생산 설비 담당 인력으로 처음 외국인을 고용했다. 업무 관련 전공을 한 전문대·직업계고 졸업자를 채용하고 싶었는데 요즘 고용 시장에서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아 외국인을 고용했다는 것이다. 이 업체 유운용 이사는 “제조업 생산직은 고학력일 필요가 없는데 4년제 대졸자를 채용하려면 인건비가 추가로 들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가 끝나고 항공 산업이 모처럼 활황인데 조건에 맞는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한국은 작년 대학 진학률이 72.8%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학력 거품’ 현상으로 산업 현장의 학력 비일치 문제가 최근 10년 사이 크게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김현국

교육부가 10일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에 따르면, ‘나의 학력이 업무가 요구하는 수준보다 높다’고 대답한 ‘학력 과잉’ 성인들이 한국은 31.3%로 나타났다. OECD 평균(23.4%)보다 7.9%p 높은 수치다. ‘학력 과잉’ 비율은 지난 조사(2013년) 때 21.2%로 OECD 평균(21.4%)보다 낮았는데 11년 만에 크게 늘었다.

‘나의 학력이 업무가 요구하는 수준보다 낮다’는 ‘학력 부족’ 비율은 3.7%로, OECD 평균(9.5%)보다 낮았다. ‘나의 학력이 업무가 요구하는 수준’이라는 ‘적정 학력’ 비율 역시 65%로 OECD 평균(67.2%)에 비해 낮았다.

이번 조사는 OECD가 2022~2023년 회원 31국의 16~65세 성인 약 16만명(한국 6189명)을 대상으로 방문 면접 방식으로 실시했다.

반면, 한국 근로자 중에 ‘실제 업무에 필요한 기술(스킬)을 제대로 못 갖췄다’고 대답한 비율은 11%로 OECD 평균(9.6%) 보다 높았다. 자기가 업무가 요구하는 기술 이상을 갖췄다는 응답자(23.9%)는 OECD 평균(26.1%)에 못 미쳤다. 근로자들의 학력은 과잉인 경우가 많은 반면, 실제 직장에서 요구하는 기술을 갖춘 이들은 적다는 것이다. 배영찬 한양대 명예교수는 “산업 현장이 원하는 역량과 대학 때 전공이 일치하지 않는 근로자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재직 중에도 끊임없이 훈련과 교육을 받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은 탓도 크다”고 했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35세를 기점으로 전반적인 역량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성인의 언어능력 평균 점수는 249점으로 OECD 평균(260점)에 못 미쳤다. 지난 2013년 조사보다도 24점 떨어졌다.

나이별로 보면 16~24세(276점), 25~34세(273점)는 OECD 평균을 웃돌다가, 35~44세(259점)부터 OECD 평균 이하로 추락했다. 45~54세는 244점, 56~65세는 217점이다. 언어능력은 태블릿 화면으로 글을 읽고 이해·해석·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측정했다.

지난 2013년 조사에도 참여한 27국 중 핀란드와 덴마크를 제외한 모든 국가의 언어능력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특히 하락 폭이 컸는데, 디지털 기기 보급률과 사용률이 높은 점이 문해력 저하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수리력(253점), 적응적 문제해결력(238점)도 OECD 평균(각 263점·251점)보다 낮았다. 언어능력처럼 수리력과 적응적 문제해결력도 34세 이하는 OECD 평균보다 높고, 35세 이후부터 OECD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10대와 20대 때 대입과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교육에 매진하고 직장에 들어간 다음에는 역량을 높이려 애쓰지 않는 사회 구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고성환 한국방송통신대 총장은 “한국 근로자의 노동 강도가 높아 직장 생활을 하며 학업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한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며 “근로자가 평생교육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차원의 지원 방안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