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사정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전모(33)씨는 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월계도서관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은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14일 재개관했는데, 4층에 170여 석 규모 열람실은 없애고 대신 음악 감상 및 휴게 공간을 만들었다. 전씨는 “원래 열람실이 자리 잡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왜 없앴는지 모르겠다”면서 “책 빌리는 자료실 한쪽에서 공부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공공 도서관에서 ‘열람실’이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교육청 산하 도서관 17곳의 열람실 좌석은 2020년 총 5335석에서 지난해 4390석으로 4년 새 945석(18%) 줄었다. 대구시 공공 도서관 41곳 중 열람실이 있는 곳은 7곳뿐이다. 부산 역시 공공 도서관 53곳 중 24곳에 열람실이 없다.

열람실이 사라지는 건 최근 수년 새 벌어진 일이다. 강조되는 도서관의 주요 기능이 ‘공부 장소’에서 ‘문화 활동’으로 바뀌면서 열람실을 없애고 문화 강좌 등 시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다목적실을 만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소속 국가도서관위원회의 ‘제4차(24~28년) 도서관 발전 종합 계획’에도 ‘문화·학습·체험 프로그램 확대’ ‘지역 특화 프로그램 개발’ 등이 주요 계획으로 들어갔다. 대구시 관계자는 “열람실은 학생들 시험 기간에만 붐비고, 시민들이 동아리 활동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고 있다”면서 “한정된 도서관 공간을 상시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은 불만이다. 열람실 규모를 177석에서 97석으로 줄인 서울 동작도서관에는 민원이 종종 접수되고 있다. 이곳은 노량진 고시촌 근처에 있어 각종 시험 준비생들이 많이 찾는다. 한 시민은 도서관 홈페이지에 “고시 공부하는 구식 도서관 탈피하고 미래형 도서관 만든다면서 (열람실) 좌석 없앤 건 심각한 문제”라면서 “좌석 수가 줄었으니 (1인당) 점유 시간을 제한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사람 쫓아내는 도서관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했다. “열람실 학습 공간이 축소되어 이용자가 오히려 불편해지고 아쉽다”는 의견도 올라왔다.

도서관 열람실이 사라지면서 학생들은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KB국민카드에 따르면, 전국 스터디 카페는 2015년 112곳에서 지난해 6944곳이 돼 9년 새 62배로 늘었다. 특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스터디 카페 비용은 부담이다. 스터디 카페 이용료는 시설마다 다르지만, 보통 하루 4시간 이용에 4000~6000원 정도다. 시험 기간 2주일에 6만~9만원이 나가는 셈이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동네엔 국민 임대주택이 많은데 도서관 열람실이 없는 건 문제’라는 글도 최근 올라왔다.

최근 교육부는 학생들이 공부할 공간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공공 스터디 카페’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비어 있는 공공 시설을 찾아서 학생들이 무료로 공부도 하고 EBS 강의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접근성과 시설이 좋은 도서관 열람실은 없애면서, 다른 공공 시설을 찾아서 또 열람실을 만드는 건 앞뒤가 안 맞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