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대구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대 가운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뉴시스
지난 4일 대구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대 가운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뉴시스

정부가 올해 고3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자는 대학 총장과 의대 학장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이달 안에 의대생들이 복귀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교육부가 1년여간 지속된 의료 파행과 사회적 갈등을 수습하자는 취지로 이 같은 정부 입장을 끌어냈으나,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의대 증원을 무산시킬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래픽=이진영

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의대가 있는 40개 대학 총장 모임인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 양오봉·이해우 공동회장,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종태 이사장은 7일 오후 2시 서울정부청사에서 ‘학생 복귀 및 의대 교육 정상화’ 공동 브리핑을 연다.

이 자리에서 대학 총장·의대 학장이 함께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증원 이전으로 회귀하자는 입장을 밝힌다. 이와 관련해 이 부총리는 “각 대학 자율권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원칙적인 동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이진영

교육부는 대학 총장·의대 학장 의견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1년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의 돌파구를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면서 이달 내 의대생이 복귀하지 않으면 정부는 건의 수용을 철회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의대생 복귀가 없으면 내년도 모집 인원을 기존 정원(5058명)으로 뽑겠다는 것이다.

의대생 복귀가 시급한 의대 학장 등 의료계 ‘온건파’는 이 같은 정부 입장에 긍정적이지만, 일각에선 “실제 의대생 복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등도 교육부가 주도한 이러한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며 ‘미완의 대책’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6일 오후 국회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당정 협의를 갖고, 대학 총장·의대 학장 등의 건의를 전달했다. 권 원내대표는 당정 협의를 마친 후 “국민의힘은 의대 교육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건의 내용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대학 총장·의대 학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파행을 빚는 의대 교육 정상화를 이루자고 당정이 뜻을 함께한 것이다.

이 직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이 부총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비공개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복지부 측은 정부의 의대 증원 취지가 훼손돼선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교육 정상화를 강조하는 이 부총리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이날 회의에서 조 장관과 장 수석 등은 이 같은 결정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 심판 선고 이후에 하는 게 맞는다며 이 부총리 의견에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 대행은 이 부총리에 이어 권 원내대표까지 같은 제안을 하자 이를 수용키로 결정했다고 한다. 3월 내에 의대생들이 복귀한다는 등 조건이 달렸으니 이달까지 상황을 한번 지켜보자는 것이다.

이날 대학 총장들이 정부에 보낸 건의문에도 이 같은 ‘조건 사항’이 적혔다. 의대생이 3월 28일까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2000명이 증원된 기존 정원(5058명)으로 한다는 것이다.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은 의료인력수급추계위(추계위)에서 정하고, 추계위에서 이를 정하지 못할 시 의대 모집 인원과 총정원은 5058명으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달 내 의대생이 복귀한다면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은 사실상 3058명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의료 인력 수급을 결정하는 추계위 관련 신설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추계위에서 2026학년도 정원을 정하기 어려우면 대학 총장이 교육·복지부 장관과 협의해 모집 인원을 정하도록 부칙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최종 국회를 통과하면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 증원분을 0명에서 2000명 사이에서 결정할 수 있다.

복지부 내부에서는 “허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1년 힘들게 의료 개혁을 추진했는데 갑자기 수포로 만드는 결정이 나와 다들 낙담하고 있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도 “정부 결정이 의대생 복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가 많다.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의료계 ‘강경파’에서는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0명’이 아니라 ’3058명에서 감원’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들은 정부의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백지화 등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경희대가 최근 작년 의대 증원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한 2024학년도 신입생 102명을 ‘집단 유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1학년 1학기는 휴학 불가’라는 학칙을 엄격히 적용한 것이다. 작년 상당수 대학이 정부의 ‘학사 유연화’ 방침에 따라, 특례 조항을 만들어 유급을 면해준 것과 대비된다. 정부는 올해는 각 대학이 반드시 학칙을 지키도록 해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에게 유급 등 조처를 한다는 계획이다. 학생들이 계속 수업 거부를 이어간다면 올해는 대규모 유급 사태가 현실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