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QS가 발표한 ‘2025 세계 대학 평가 전공별 순위’에서 카이스트가 ‘컴퓨터공학·정보시스템’ 전공 세계 29위에 올랐다. 사진은 카이스트 AI 대학원 학생들. /카이스트

인공지능(AI) 분야 인재 양성의 핵심인 ‘컴퓨터공학·정보시스템(컴공)’ 분야 세계 대학 순위에서 카이스트가 29위에 오르는 등 한국 주요 대학 대부분이 전년보다 순위가 올랐다. 하지만 AI 산업을 점령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경쟁 상대인 싱가포르의 대학들과 비교해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 QS(Quacquarelli Symonds)는 12일 이런 내용의 ‘2025 세계 대학 평가 전공별 순위’를 발표했다. 인문학·공학·생명과학·자연과학·사회과학 분야의 총 55개 세부 학과별 대학 순위를 공개했다. 전 세계 100국 1700여 대학을 평가한 결과다.

그래픽=백형선

‘컴공’ 분야 국내 1위인 카이스트는 작년 50위(2023년 29위)로 떨어졌다가 올해 다시 29위에 올랐다. 카이스트의 전산학부가 작년 양질의 논문을 쏟아내며 국제 무대 주목을 받은 것이 이유로 분석된다. QS는 전공별 순위를 매길 때 ①학계 평판 ②졸업생 평판 ③논문 피(被)인용 수 ④H지수(논문 생산성·영향력)를 지표로 한다. 서울대(2024년 72위→2025년 44위), 연세대(136위→61위), 고려대(121위→67위), 포스텍(131위→86위) 등도 순위가 크게 올랐다.

AI 산업계는 크게 둘로 양분된다. 미국과 중국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 세계적인 ‘범용AI’를 구축하려 경쟁하고, 그 외 국가들이 부가가치 산업을 노리고 3위 자리를 경쟁하는 구도다. 영국 데이터 분석 업체 토터스미디어의 ‘글로벌 AI 지수’에 따르면, 국가별 AI 경쟁력 순위는 미국, 중국,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 한국, 독일 순이다.

한국은 뛰어넘어야 할 싱가포르와 영국에 비하면 해당 분야 대학 경쟁력이 크게 뒤처진다. 영국 대학은 컴공 전공에서 옥스퍼드대(5위), 케임브리지대(9위) 등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싱가포르 대학도 싱가포르국립대(4위), 난양공대(6위)가 최상위권에 올랐다. 1991년 카이스트를 모델 삼아 만들어진 난양공대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이제는 하버드대(7위)보다 순위가 높은데, 카이스트와 서울대는 10년째 30~40위권 안팎을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신생 학문으로 분류되는 ‘데이터과학·인공지능’ 전공 순위에서도 난양공대(5위), 싱가포르국립대(7위)는 최상위권이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가장 높은 대학이 서울대(25위)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한국 대학이 내놓는 연구의 질은 결코 중국, 싱가포르, 영국 등에 뒤지지 않지만, 투자 규모가 빈약해 연구진 규모, 논문 생산력 등 양적인 면에서 상대가 안 된다”며 “첨단 학과 증원, AI 분야 석·박사 학비·생활비 지원 등에 있어 정부가 더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7년부터 ‘인공지능 싱가포르(AISG)’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에 AISG 사무실을 두고, 대학 AI 인재 양성, 연구·개발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전 세계 인재를 흡수하려 싱가포르 대학에서 AI 박사 과정을 밟겠다는 외국인에게 학비에다 월 545만원 지원금도 퍼준다. 작년 난양공대는 정부 지원을 받아 AI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컴퓨팅·데이터사이언스 단과대까지 설립, 교수만 100명 넘게 충원했다.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 기술 전공에서 한국은 전반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재료과학’ 전공에서 카이스트가 작년 21위에서 올해 18위로 올랐다. 서울대(22위→19위), 포항공대(45위→24위), 연세대(49위→35위), 고려대(100위→49위), 성균관대(74위→49위) 등 ‘톱50’ 안에 6곳이 들었다. ‘전기·전자공학’ 전공에서도 카이스트(31위→22위)와 서울대(35위→33위) 순위가 올랐다.

그러나 이 분야 역시 경쟁 상대인 중국 대학들이 세계 정상급으로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아쉽다는 평가가 나왔다. ‘재료과학’ 전공에서 중국 대학은 칭화대(12위→6위), 베이징대(17위→14위), 상하이교통대(25위→16위), 저장대(40위→23위)가 상위권에 올랐다. ‘전기·전자공학’은 칭화대가 10위를 기록했다.

‘사회정책·행정’ 전공에서는 연세대가 6위, 서울대가 8위에 올랐다. QS의 총 55개 전공별 대학평가 순위에서 한국 대학이 ‘톱10’에 오른 건 2018년 서울대가 ‘스포츠 관련 전공’에서 10위를 기록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한국 대학들은 ‘톱20’ 안에 10곳(작년 3곳)이 이름을 올렸다. 서울대 ‘화학공학’(11위), 서울대 ‘언어학’(17위), 연세대 ‘신학·종교학’(17위), 서울대 ‘현대언어’(19위), 한예종 ‘공연예술’(19위), 서울대 ‘화학’(20위) 등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대학이 ‘톱20’에 올해 75곳(작년 33곳) 이름을 올려 가장 많았다. 홍콩(30곳)과 합하면 105곳이다. 공학과 자연과학 분야뿐 아니라 베이징대 ‘언어학’(2위), 칭화대 ‘미술디자인’(14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위권을 휩쓸었다. 싱가포르 대학은 올해 54곳(작년 51곳)이 ‘톱20’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