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의대에서 학생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연세대·고려대·경북대 의대생들은 21일까지 복학원을 안 내면 학칙에 따라 제적된다고 학교 측은 밝혔다. /고운호 기자

전국 40개 의대가 이달까지 의대생들이 수업에 복귀하지 않으면 학칙에 따라 유급·제적 처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1일부터 의대들의 ‘등록 데드라인’이 속속 도래한다. 21일 연세대·고려대·경북대 등 세 의대가 처음으로 1학기 등록을 마감한다. 이날까지 세 대학 의대생들이 복학원을 제출하지 않으면 대규모 제적 사태가 현실화하는 것이다.

세 대학 의대생들의 복귀 여부에 따라 2026학년도 모집 인원도 변동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의대생들이 전원 3월 말까지 복귀하면 내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전(3058명)으로 돌린다”고 밝힌 바 있다.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연세대·고려대·경북대는 의대생들의 복학원 제출 기한을 21일로 잡았다. 이날까지 복학원을 안 내면 학칙에 따라 ‘제적’된다.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며 막바지 설득 작업을 하고 있지만, 뚜렷한 학생 복귀 움직임이 아직 없는 상황이다.

대규모 제적 사태에 대비해 편입생 모집을 준비하는 대학들도 나오고 있다. 편입생으로 빈자리를 채워 의대 교육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은 교육부에 “편입학 요건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대학들의 편입학 규모는 교육부가 정한 규정에 따르기 때문에 결원이 생긴다고 모두 편입생으로 뽑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의대에 한해서 결원 모두를 편입생으로 뽑을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한 것이다.

일러스트=양인성

◇복학원 안 내면 제적… 등록 후 수업거부 땐 유급·학사경고

대학들이 정한 ‘의대 복귀 데드라인’이 임박함에 따라 의대 안팎에서도 다양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한 사립대 총장은 “의대생 상당수가 복귀를 원하지만, 의대생 대표들의 눈치를 보며 막판 고민하는 상태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의대생은 작년처럼 집단으로 ‘버티기’에 들어가면 정부와 대학이 제적이나 유급 조치를 면해줄 것이라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가 지난해 집단 휴학을 받아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와 대학 입장이 확고하다. 한 수도권 대학 총장은 “올해는 절대 ‘봐주기’는 없다”며 “이번에 휴학을 승인하면 내년은 의대 교육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세대는 20일 ‘긴급 안내’ 문자를 통해 21일까지 복학 신청을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24일 오후 ‘미등록 제적 예정 통보서’를 보낼 것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교육부 역시 올해 학칙에 따라 미복귀 의대생들을 조치하지 않는 대학은 감사에 돌입하는 등 강력하게 지도한다는 계획이다.

대부분 의대는 복학 대상 학생들이 전체 수업 일수의 4분의 1가량이 되는 시점까지 등록하지 않으면 제적된다고 학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등록은 휴학하던 학생이 복학원과 등록금을 내는 것을 말한다. 연세대·고려대·경북대 의대는 이 기한이 21일이다. 이 대학 학생들은 21일 반드시 복학원을 접수해야 하고, 안 내면 제적된다.

의대생들의 등록 현황은 대학마다 제각각이다. 등록금을 내고 등록은 한 채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들도 있지만, 일부는 아예 등록 자체를 안 하고 학교에 안 나오고 있다. 연세대는 1학년을 제외한 대부분 학생이 ‘미등록 휴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학년은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입학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이미 등록을 했다. 나머지 학생들이 21일까지 복학원을 안 내면 예과 2학년, 본과 1~4학년 약 600명이 ‘집단 제적’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대학들은 ‘집단 제적’이 현실화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작년 입학한 24학번이라 보고 있다. 대부분 대학은 제적당한 학생들이 1년 뒤 재입학할 기회를 준다. 그런데 재입학 기회는 해당 학년에 자퇴자가 나오는 등 결원이 생겨야 한다. 24학번은 작년에 휴학했기 때문에 제적 후 재입학을 해도 1학년으로 해야 하는데, 의대에선 1학년에 결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재입학 기회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신입생을 포함해 일부 의대생은 복학원과 등록금을 내고 ‘등록’은 하더라도, 계속 수업을 거부할 수 있다. 이들은 당장 ‘제적’은 안 되지만, 학사 경고나 유급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래픽=양진경

21일 세 대학을 시작으로 다음 주 중 대부분 의대의 1학기 등록 마감일이 이어진다. 건양대(24일), 서울대·이화여대·부산대(27일), 경희대·인하대·전남대·조선대·충남대·강원대·가톨릭대(28일), 을지대(30일) 등이다. 이 대학들은 연세대·고려대·경북대 의대생들의 움직임과 대학 측 조치를 숨죽여 지켜보는 상황이다.

정부와 의료계에서도 21일 학생들의 복귀가 ‘의정 갈등’ 국면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3월 말까지 의대생들이 전원 복귀할 경우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전(3058명)으로 돌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복귀하지 않으면 2000명 증원된 5058명을 그대로 뽑겠다고 했다. 만약 21일 연세대, 고려대, 경북대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5058명을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다른 대학 의대생들도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20일 “정당하게 제출된 휴학 원서를 부정하고 학생의 권리를 침해하는 교육부와 대학의 폭압적인 행태를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대학들이 휴학을 승인하지 않고 제적·유급 등 조치를 한다면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계에선 “막판까지 학생들이 고심하다가 복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일부 대학에는 2025학번 신입생 학부모들이 미복귀 시 유급·제적 여부를 묻는 전화가 이어졌다고 한다. 제적 의대생의 자리를 편입생으로 채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녀가 실제로 제적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해우 동아대 총장은 “의정 갈등을 이유로 사립대가 언제까지고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사태를 관망만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편입학 방안도 준비해 놓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급·제적

유급은 상위 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의대는 수업 일수의 4분의 1이상을 결석하면 F 학점을 주고,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이 나오면 유급 처리한다. 제적은 학교가 학생의 학적을 상실시키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의대는 ‘2학기 연속 유급된 자’ 또는 ‘3회 이상 유급 또는 학사 경고를 받은 자’ 등에 대해 제적 처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