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 볼모로 하는 쟁의행위 철회하라!”
16일 오전 7시 대전 서구 둔산여고 정문 앞, 학부모 6명이 피켓을 들고 서서 이렇게 외쳤다. 피켓에는 ‘학부모 가슴이 찢어진다. 김치 포함 3찬이 웬 말이냐’고 적혀 있었다. 학부모들은 지난 7일부터 매일 아침 이런 시위를 하고 있다.
이 학교는 급식 조리원들의 파업으로 점심과 석식이 부실하게 나오다가 지난 2일부터 석식이 중단된 상태다. 학생들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야간 자율 학습을 하거나 그냥 귀가하고 있다.
둔산여고의 급식 사태는 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대전지부가 작년 6월부터 급식 조리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대전시교육청과 교섭을 벌이다 지난 2월 결렬되자 쟁의행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개학과 동시에 조리원들은 ‘노동 간소화’를 요구하며 재료 손질 등을 거부하고 있다. 그 결과 여러 학교에서 일부 재료가 빠진 음식이 나오고, 교직원들이 조리를 대신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급식을 중단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대전 중구 글꽃중은 조리원들이 11일 점심 배식 후 식판을 씻지 않고 퇴근한 뒤 단체 병가를 내 급식이 중단됐다. 계란 깨기 등 식재료 손질을 거부하며 학교 측과 갈등을 빚다가 아예 출근을 안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학교에선 지난 7일 조리원들이 긴 미역 손질을 거부해 점심에 ‘미역 없는 미역국’이 나오기도 했다.
대전 지역 조리원들은 1인당 급식 인원을 80명 이하로 낮춰 줄 것과 노동 강도를 높이는 행위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교직원 (별도) 배식 금지’ ‘냉면기 사용 제한(월 2회)’ ‘반찬 수 3찬(김치 포함) 제한’ ‘사골, 덩어리 고기 삶기 금지’ ‘튀김·부침 메뉴 주 2회 초과 금지’ 등이다.
실제 시·도교육청들이 채용하는 조리원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사실상 정년이 보장되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임금이 낮아 정년 전에 퇴사하는 이도 많다. 월급은 200만~300만원 정도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작년 조기 퇴사율은 60.4%에 달한다.
하지만 대전시교육청 측은 조리원들의 요구가 과하고, 학생 건강을 해칠 수 있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전시교육청 측은 “조리원 1인당 평균 급식 인원을 2019년 116명에서 지난해 105명으로 줄였는데, 노조 요구대로 조리원 정원을 급격하게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반찬 수나 조리 방식을 제한하는 것은 학생들의 다양한 영양소 섭취를 저해할 수 있어 수용 불가”라고 말했다.
학생·학부모들은 반복되는 ‘급식 파업’에 싸늘한 분위기다. 이번엔 특히 ‘재료 손질 거부’ 등 노조 요구가 알려지며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지난 8일 둔산여고에선 조리원들이 돼지국밥의 재료 손질을 거부해 교직원들이 대신 고기를 삶기도 했다.
둔산여고 2학년 학부모 김경석씨는 “사실상 시중 판매 제품을 간단히 조리해 주고, 반찬도 김치 포함 3개만 주겠다는 이 황당한 요구를 부모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며 “아이들 밥을 볼모로 매번 파업을 할 것이라면 급식을 위탁하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대전 학부모 커뮤니티에도 “급식이 애들을 위한 건데 귀족 공무직 밥벌이 수단이 된 것 같다” “조리원 없애고 위탁 급식하라”는 글과 댓글이 수백 개씩 쏟아지고 있다.
둔산여고 학생회도 11일 입장문을 내고 “학교 급식을 담보로 학생들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행위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며 “건강하고 안정적인 급식 제공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조리원들이 계속 투쟁하면 급식을 집단으로 거부하겠다고 했다.
현재 전국 대부분 학교들은 학교마다 조리원을 두고 급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직영 급식’을 하고 있다. 2006년 CJ푸드시스템(현 CJ프레시웨이)이 위탁 급식을 맡은 학교들에서 집단 식중독 증세가 나타난 후 학교급식법이 개정돼 2010년부터 직영 급식이 의무화됐기 때문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직영 급식 전환 후 급식 환경이 되레 열악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국 5만명에 달하는 조리원 상당수가 민노총에 가입해 ‘노조 파워’가 강해졌고, 파업이 잦아 ‘급식 대란’도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학교 급식 시장의 경쟁 요소가 사라지며 급식의 질이 정체됐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