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정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확정한 가운데 이날 오후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인근에서 한 의대생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의대생 단체 대표들은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의대생들을 소년병, 총알받이처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의대 수업 거부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최근 수업에 복귀한 수도권 의대 본과생 A씨는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의대생 투쟁에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 학교로 돌아갔다”고 했다.

소속 대학과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A씨는 “고학년이라 학교에서 제적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복귀 이유지만, 학생들이 제적, 유급되든 말든 계속 정부에 맞서 버티면 된다는 의대생 지도부에 크게 실망한 것도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단 휴학이 시작된 작년 초부터 의대생 지도부에선 ‘개인 행동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지금까지도 뚜렷한 대안도 없이 강경 투쟁만 하는 데에 많은 의대생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며 “정부가 모집 인원 동결안을 제시했는데도 (정부와) 대화하기를 줄곧 거부하고 있어 의대생 지도부가 사태를 해결할 의지도 생각도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지난 1년간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 수업 거부 등 대정부 투쟁이 몇몇 강경 지도부에 좌우된 점도 지적했다. A씨는 “대부분의 의대생, 전공의는 현재 정부 투쟁에 대한 의지가 크지 않은데 극소수 강성 지도부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했다.

지방 출신인 A씨는 지난해 2월 의정 갈등 사태가 터진 직후 다른 의대생처럼 휴학했지만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있었다. 언제 사태가 끝나 학교에 돌아갈지 몰랐기 때문이다. A씨는 “1년 동안 단기 아르바이트로 월세를 내며 학교 인근 원룸에서 지냈다”며 “전공의처럼 취직할 수도 없어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다른 의대생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의대생 미복귀 사태가 오래가자 일각에선 “의대생에게 지나친 특혜를 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A씨는 “(특혜라는 지적에) 100% 동의한다”며 “정부 정책에 항의하더라도 수업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유급이나 제적을 당하는 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의대생들의 ‘등록 후 수업 거부’는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최근 학교에 복귀한 다른 수도권 의대 본과 3학년 B씨도 “아직까지 강경파 의대생들은 전공의와 의대생이 드러누우면 정부가 백기를 들 수밖에 없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 같다”며 “레지던트가 떠나면 대학 병원이 무너져 정부가 (증원을) 포기할 것이라고 했지만 어찌 됐든 전국 병원 시스템은 유지됐고 이젠 ‘등록 후 수업 거부’ 투쟁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투쟁 방식을 왜 고수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선기획본부 출범식 및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 참석해 있다./뉴시스

B씨는 “얼마 전 전공의 단체 대표가 학교에 복귀한 의대생을 두고 ‘팔 한 짝 내놓을 결심도 없었느냐’고 한 발언이 충격을 줬다”면서 “의대생과 전공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돼 ‘지금이라도 내 생활을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은 의대생이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바람에 1년을 버렸다는 이유로 ‘정부가 피해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이대로 수업 복귀 못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이 아무리 비합리적이어도 지난 1년간 (휴학 투쟁이라는) 행동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피해 보상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B씨는 최근에야 병원에 나가 임상 실습을 하기 시작했다. B씨는 “1년 만에 학교에 가니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싶고,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고 행복하다”면서도 “휴학 기간 동기들도 만날 수 없고 교수님에게 궁금한 것도 못 물어봐서 힘들었다. 다른 학교도 하루빨리 수업이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