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인천사이버진로교육원 메타버스 플랫폼에 본지 기자가 접속해 아바타(가운데)를 만들어 가상 세계를 체험했다. 이날 1시간 동안 플랫폼을 돌아다녔지만 다른 ‘아바타’를 한 명도 못 만났다. /인천사이버진로교육원 메타버스 플랫폼

21일 오후 인천교육청이 개발한 ‘인천사이버진로교육원 메타버스 플랫폼’에 접속해 남학생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 세계를 돌아다녔다. 이곳엔 ‘진로교육원’ ‘바이오센터’ ‘인천사이버국제공항’ 등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는 10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예컨대, ‘인천사이버국제공항’에선 ‘보안검색요원’이란 직업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미니 게임도 할 수 있다.

이날 메타버스 플랫폼을 1시간 이용하는 동안 다른 접속자는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후 23일까지 학생들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오후 시간대에 10차례 넘게 접속했지만 역시 다른 접속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천 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나 교육청에서 권고해 일회성으로 설치해 이용한 적은 있지만 실제 수업에 쓰는 건 거의 못 봤다”고 말했다.

이 메타버스 플랫폼은 인천교육청이 2021년부터 2년간 43억원을 들여 개발했고, 2023년 3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학생들이 진로를 체험하고 온라인 강의도 듣게 하자는 취지로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최대 1만명까지 동시 접속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다운로드 횟수는 7만회 정도. 인천 전체 초중고 학생 31만명의 22% 정도다. 그마저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유령도시’가 됐다.

2020년 코로나 때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이 앞다퉈 도입한 메타버스 프로그램이 이용자들의 외면으로 ‘세금 낭비’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시 메타버스는 ‘비대면 신기술’로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며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가상 세계에서 나를 표현하는 ‘아바타’를 만들어 서로 소통하는 게 메타버스의 핵심이다. 특히 코로나로 학교에 못 가는 학생들이 가상 공간에서 소통하고 다양한 체험을 하는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로블록스’나 ‘마인크래프트’ 같은 유명 메타버스 플랫폼에 열광하는 10대들의 입맛에도 맞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래픽=김성규

하지만 코로나가 끝나 메타버스 열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면서 공공기관이 만든 메타버스 플랫폼도 외면받기 시작했다. 서울교육청이 23억원을 투입해 제작한 메타버스 플랫폼 ‘메타쌤’도 작년 5월 서비스 시작 이후 하루 평균 접속자 수가 400명 안팎에 그친다. 한국에서만 매일 수십만명이 접속해 이용하는 로블록스 같은 민간 플랫폼과 비교된다. 경기교육청도 ‘하이랜드’라는 플랫폼을 개발해 작년 12월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역시 이용률이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자체가 젊은 세대를 겨냥해 만든 메타버스 프로그램들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곧 사라질 예정이다. 서울시가 55억원을 들여 2023년 1월 서비스를 시작한 ‘메타버스 서울’은 하루 평균 접속자 수가 500명 안팎에 머무르며 1년 9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인천시는 9억원을 들여 ‘메타버스 인천’을 개발하고 작년 시범 운영까지 했는데 현재 사업 중단을 위한 행정 절차를 밟고 있다. 다른 지자체들의 실패 사례가 줄줄이 이어지자 아예 사업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공공기관들의 실패 사례가 이어지는 건 빈약한 콘텐츠 문제도 크다. 아바타로 가상 공간을 방문해도 공공기관의 홍보 영상이나 교육용 영상을 보고 퀴즈 게임을 해보는 정도가 콘텐츠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서울 구로구 한 중학교 교사는 “2000년대 초반 유행한 ‘교육용 플래시게임’에 메타버스라는 껍데기만 씌워놓은 수준의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뛰어난 메타버스를 이용해본 학생들에게 교육청이나 지자체가 개발한 조악한 메타버스를 쓰라고 할 때마다 민망하다”고 했다.

김영민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제대로 된 메타버스를 만들려면 이용자가 흥미를 느낄 수준의 그래픽, 가상 세계를 채우는 양질의 콘텐츠, 소셜네트워크 시스템 구축 등 막대한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며 “지자체가 수십억 원 수준 예산으로 매력적인 메타버스를 만들겠다고 나선 게 애초부터 무리였다”고 했다.

☞메타버스

가상·초월을 뜻하는 그리스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과 연동된 3차원 가상 세계를 가리킨다. 가상 캐릭터를 만들어 다른 이용자와 교류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비대면 수요가 늘자 신기술로 주목받아 여러 기관이 앞다퉈 도입했지만 팬데믹 이후 침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