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 옥계와 동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산불의 발단은 A(60)씨가 토치로 낸 불이다. A씨는 지난 6일 현조건조물방화, 일반건조물방화,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A씨 구속을 두고 경찰 안팎에선 “검거한 게 다행”이라는 말이 나온다. 왜 그럴까.
◇산불 가해자 검거율 41%
경찰은 방화를 살인, 강도, 강간 등과 함께 강력범죄로 분류한다. 특히 방화는 특정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의 특징을 갖고 있다. 방화범죄가 강력범죄 중에서도 악질범죄로 꼽히는 이유다.
2021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발생한 방화 및 방화의심 화재는 758건에 달한다. 그나마 이전보다 줄어든 수치다. 2011년에는 2250건이었고, 2016년에는 987건으로 집계됐다. 방화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방화 사건이 잇따르지만, 범인을 붙잡기는 쉽지 않다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말이다. 경찰 관계자는 “요즘 어딜가도 CC(폐쇄회로)TV가 있어서 범죄자 잡기 쉬워졌다고 하지만, 방화는 얘기가 다르다”며 “도심에서 벌어진 방화사건이 아닌 이상 범죄자를 찾는 게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산불의 경우 특히 범죄자를 특정해서 붙잡기가 어렵다. 실제 산불을 일으킨 가해자를 붙잡는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산림청의 산불 가해자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2020년 10년 동안 474건의 산불 가운데 검거된 가해자는 197명뿐이다. 검거율은 41.7%다. 산불을 내고도 10명 중 6명은 발뻗고 잔다는 얘기다.
◇방화범 정신장애 비율은 14%뿐
그럼 누가 방화를 할까. 강원 강릉 옥계와 동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A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주민들이 수년 동안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한다.
방화범 중에선 정신 이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19년 4월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와 흉기난동으로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안인득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지난 2019년 8월 전남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를 뿌린 뒤 방화한 B(당시 42세)씨는 “주유소에 불을 내라는 환청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검찰청의 2021 범죄분석에 따르면 방화범 가운데 정신장애가 있는 경우는 14%에 불과했다. 범행시 정신상태가 ‘정상’인 경우가 절반 가까운 44.3%였고, 술에 취한 상태가 41.7%로 집계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검거된 방화범의 83.9%는 남성이었다. 연령별로 분류하면 51~60세가 29.7%로 가장 많았다. 이어 41~50세(21.8%), 61세 이상(15.9%), 31~40세(12.4%) 순이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방화범의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51~60세였다.
◇불 지른 놈이 또 지른다
경찰범죄통계 최신 자료(2020년)에 따르면 2020년 1196명의 방화범이 붙잡혔다. 이중 전과가 없는 방화범은 255명(21.3%)뿐이었다. 파악이 안 되는 147명을 제외한 전체의 66.3%(794명)의 방화범은 전과가 있었다. 이중 전과 9범 이상이 235명으로 가장 많았다.
2020년 붙잡힌 방화범 중 92명은 이전에도 방화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었다. 그중 절반 가까운 40명(43.4%)은 방화 범죄를 저지른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또 다시 방화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1년 울산지법은 김모(당시 51세)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울산에 있는 임야에 지속적으로 불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2005년 12월 13일에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불을 저질렀다고 한다. 판결문은 당시 그의 수법을 이렇게 표현했다.
김씨는 이뿐 아니라 2011년 3월까지 37회에 걸쳐 총 48.456헥타아르에 심어져 있는 1억2949만2000원 상당의 해송 등 나무 1만9563본을 훼손한 것으로 조사됐다.
◇희대의 방화범도 징역 10년
형법 164조(현주건조물 등 방화)는 ‘불을 놓아 사람이 주거로 사용하거나 사람이 현존하는 건조물 등을 불태운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더해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건조물이 아닌 일반물건에 대한 방화(형법 167조)를 저질러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정작 방화 사건에 대한 처벌 강도는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7년 3월 산림 244헥타아르를 잿더미로 만든 강릉 옥계 산불 당시 경찰은 약초 채취꾼 2명을 붙잡았다. 경찰이 이들이 담배꽁초를 버려 산불이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했다. 하지만 법원의 선고는 각각 징역 6개월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희대의 방화범은 어떨까. 지난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에 불을 낸 방화범 채모(당시 60세)씨는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2011년 3월까지 울산 등지에서 37차례의 산불을 낸 이른바 ‘봉대산 불다람쥐’ 김모(당시 52세)씨도 징역 10년이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