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은 의미 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모든 걸 기록해야 합니다. 이다음, 어떤 형태로든 해석할 길이 분명 생깁니다.”
법의학자 이호 교수는 2001년 전남 나주에서 발생한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피해자는 17살의 어린 여고생. 알몸의 수중시체로 발견돼 성 관련 강력 사건임이 의심됐지만 단서는 단 하나, 시신뿐이었다.
사건 부검의를 맡았던 이 교수는 24일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범잡2(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에 출연해 무려 16년 만에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시신에서 증거물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며 당시 손목을 제압당한 흔적, 목이 졸리고 가슴을 압박당한 흔적, 무언가에 머리를 부딪친 흔적 등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가 물속에 들어갔을 때 살아있었는지 죽었는지를 봐야했다. 살아있었다면 물을 마셨을 거고 물을 마시고 뿜는 과정에서 기도에 경련이 일어나 작은 거품이 만들어진다”며 “물은 폐와 기도를 지나 전신을 순환한다. 물속에 서식하는 플랑크톤이 다른 장기에서도 검출됐다. 물속에서 숨을 쉬었다는 것. 다시 말해 물속에서 목이 졸렸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잡을 결정적 단서는 없었다. 시신에 남은 정액을 채취해 DNA 검사를 진행했고, 경찰은 이를 피해자 주변 인물과 인근 거주자 약 200명과 대조했으나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사건은 결국 미제가 됐고 피해자와 유족의 억울함은 그대로 묻히는 듯했다.
수사가 다시 시작된 건 10년이 지난 후였다. 2010년 통과된 DNA법이 계기가 됐다. 살인, 강간, 방화 등 강력범들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법인데, 이를 위해 전과자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10년 전 DNA와 동일한 인물을 포착한 것이었다. 다른 범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던 김모씨였다.
김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피해자와 성관계를 한 것은 맞지만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이 교수는 “제3의 범인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성관계와 살인 시점이 중요한 관건이 됐으나 경찰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며 “결국 살인죄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없어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다”고 말했다.
절망스러운 상황을 역전시킨 건 법의학이었다. 재수사 의뢰를 받은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가 수사관들이 기록한 체액 채취 과정을 다시 주목한 덕분이었다. 당시 현장을 살폈던 수사관들은 수중에서 증거가 씻겨 내려갈 것을 우려해 모든 과정을 매우 꼼꼼히 기록해뒀다고 한다.
그중 이정빈 교수가 유심히 들여다본 것은 ‘질의 입구와 가까운 쪽에서 정액을 채취할 때는 희멀건 정액만 묻어 나왔고, 깊숙한 곳에서는 생리혈과 정액이 섞이지 않은 상태로 묻어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김씨 주장대로 성관계만 했다면 피해자는 이후 몸을 움직였을 것이고 중력의 영향을 받아 생리혈과 정액이 섞일 수밖에 없지만, 기록은 달랐다.
이정빈 교수는 직접 실험에 나서 이를 증명해냈다. 혈액과 정액을 나란히 둔 상태에서 6시간30분을 기다려도 섞이지 않던 둘이 잠깐의 흔들림에 바로 섞여버리는 순간을 확인한 것이다. 이후 ‘성관계 이후 정액이 배출되고 피해자는 움직일 시간이 없었다. 특히 앉거나 서는 등의 생존 반응이 없었다. 즉 성관계 후 사망까지 시간은 매우 짧았고 따라서 성관계를 한 사람이 살인범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감정서를 제출한다.
김씨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지만 살인 혐의가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호 교수는 “법의학적으로 푼 사건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미가 있든 없든 당시에는 해석이 불가능했지만 수사관들이 정확한 기록을 해뒀다는 사실”이라며 “정확한 기록이 해석의 길을 열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사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