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길거리에서 60대 남성이 무차별 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11일 오전 6시쯤 사람의 왕래가 적지 않은 아파트 단지 입구 앞에서 얼굴에 피가 흥건한 상태로 바닥에 등을 대고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약 14분간 그는 방치돼 있었다. 이 시간 동안 그의 곁을 지나간 행인 45명 가운데 누구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이날 “중국 국적의 40대 남성 A씨를 살인 및 폭행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오전 6시쯤 서울 구로구 구로동 한 공원 부근 도로에서 60대 남성 B씨를 여러 차례 발로 차고 도로 경계석(연석)으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다. 그는 B씨를 폭행한 직후 인근에서 리어카를 끌고 있던 고물수집상 C씨도 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본지가 확인한 현장 CCTV에 따르면, A씨는 범행이 벌어진 장소 주변을 맴돌다 오전 5시 58분쯤 맞은편에서 60대 B씨가 걸어오자 그에게 다가가 여러 차례 발길질을 했다. 바닥에 쓰러진 B씨 얼굴을 수차례 발로 밟고, 주머니를 뒤져 소지품을 꺼내 챙겼다. 그 뒤 도로 인근에 있던 연석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려 내리쳤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1분 남짓이었다. 가해자는 오전 6시쯤 현장을 떠났다.
하지만 피해자는 그로부터 14분 뒤 경찰과 소방관이 도착했을 때 이미 숨져 있었다. 이 시간 동안 그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사실상 방치돼 있었다. CCTV를 보면 14분간 행인 45명이 B씨가 쓰러진 도로를 지나갔지만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거나 일으켜 세우는 등 직접 도움을 준 사람은 없었다. 6시 7분쯤 누군가 소방에 “얼굴을 다친 사람이 있다”며 신고를 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이 발길을 멈추고 먼발치에서 B씨 주변을 서성이거나 그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상태를 살폈을 뿐이었다. 인근의 한 아파트 관계자는 “CCTV를 보니 범행 5분 뒤까지도 피해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데, 도와주는 이는 없고 오히려 멀리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A씨가 이른바 ‘묻지 마 폭행’을 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와 숨진 사람, 고물수집상은 모두 서로 모르는 사이다. 다만 경찰에 체포된 후 가해자를 검사했더니 몸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약물에 의한 환각 상태에서 무차별로 저지른 범행일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라고 했다. 경찰은 A씨가 환각 상태였는지를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검사를 의뢰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A씨를 상대로 이르면 12일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구체적 범행 동기 등을 더 조사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