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북구 서변동의 산에서 산불을 끄던 헬기가 추락해 70대 조종사 1명이 숨졌다. 이 헬기는 제작한 지 44년 된 노후 기종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26일 경북 의성 산불 현장에서 낡은 헬기가 추락해 70대 조종사가 숨진 지 11일 만에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한 것이다.
6일 경찰과 산림 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12분쯤 서변동 산에서 불이 났다. 산림 당국은 헬기 5대를 띄우고 진화 차량 24대, 대원 69명을 투입해 1시간 만인 오후 4시 18분쯤 불길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오후 3시 40분쯤 헬기 1대가 산불 현장에서 약 100m 떨어진 비닐하우스에 추락해 조종사 정모(73)씨가 숨졌다.
헬기에는 정씨만 타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를 목격한 김영호(70)씨는 “헬기가 저수지에서 물을 담은 뒤 낮게 날아가다 갑자기 추락했다”며 “꼬리 날개가 비닐하우스에 걸려 기체가 뒤집어졌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헬기가 산불 현장 근처의 저수지에서 물을 담은 뒤 선회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현장에는 초속 10m가 넘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산림 당국은 담뱃불이 튀어 산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씨가 몬 헬기는 1981년 미국의 벨 헬리콥터사가 제작한 ‘BELL 206L’ 기종이다. 제작한 지 44년 됐다.
물 550L를 담을 수 있는 소형 헬기다. 길이 12.96m, 너비 2.33m, 높이 3.56m 크기다.
대구 동구가 봄철 산불 예방을 위해 민간 업체에서 빌린 것이다.
정씨는 1986년부터 39년간 경찰청, 민간 업체 등에서 헬기를 조종해왔다. 평소 책임감이 강하고 후배들에게 다정한 선배였다고 한다.
앞서 지난달 26일 경북 의성군 신평면의 산불 진화 현장에서도 제작한 지 30년 된 헬기가 추락해 경력 40년의 베테랑 조종사 박모(73)씨가 숨졌다. 당시 사고 목격자는 “헬기가 진화 작업을 하다 전깃줄에 걸려 추락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 헬기는 강원도 인제군이 민간 업체에서 빌린 헬기였다.
연이은 산불 헬기 사고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헬기 조종사 정년을 65세로 권고하고 있지만 법 규정은 없다”며 “산불 현장은 특히 연무가 끼어 시야가 나쁜 데다 돌풍이 부는 경우도 있어 70대 조종사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박원태 청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헬기 수명은 보통 30~45년 정도지만 기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을 경우 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산림청이 보유한 진화 헬기 50대 중 제작한 지 30년 이상 된 헬기는 12대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하거나 민간 업체에서 빌린 헬기도 노후화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한편, 이날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낮 12시 35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의 한 산에서 산불이 났다. 산림 당국은 1시간 10분 만인 오후 1시 45분쯤 큰불을 잡았다.
울산 울주군 온양읍에서도 오후 1시 48분쯤 산불이 났다. 불길은 오후 3시 30분쯤 잡혔다. 산림청 관계자는 “그라인더로 풀을 깎다가 불티가 날리면서 산불로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온양읍에선 지난달 22일에도 큰불이 나 산림 등 931ha를 태우고 닷새 만에 진화됐다. 울산에서 발생한 산불 중 가장 큰 산불이었다. 당시에는 용접 작업 중 불똥이 튀어 산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외에 전남 순천과 강원 영월에서도 잇따라 산불이 났다가 진화됐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지난달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등에서 대형 산불이 나 31명이 죽고 산림 등 4만8000ha가 불탔는데 아직도 실화(失火)가 잇따르고 있다”며 “요즘 같은 건조한 날에는 작은 불씨도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