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로고.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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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 사건이 가장의 사업 실패 등 경제적 압박을 계기로 벌어진 일가족 살해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용의자로 지목된 50대 남성 A씨는 범행 직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용인서부경찰서는 14일 살인 혐의로 A씨를 형사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55분쯤 A씨가 거주하는 용인시 수지구 아파트에서 타살 흔적이 있는 5명을 발견했다. A씨의 누나로부터 “A씨가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고, 소방당국의 공동대응 요청으로 경찰이 함께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안방 등에서 80대 부모, 50대 배우자, 20대 자녀, 10대 자녀 등 총 5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 시신에는 흉기나 둔기 사용의 흔적은 없었다. 경찰은 “수면제를 복용한 후 A씨가 직접 피해자들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살해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현장에서는 A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메모가 발견됐다. 해당 메모에는 ‘범행을 저지르고 본인도 죽겠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메모와 피해자 부검, A씨의 행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범행 동기를 분석할 예정이다.

A씨는 범행 직후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광주광역시 동구의 한 빌라로 도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과 차량 번호판 인식을 통해 그의 이동 경로를 신속히 파악했고, 광주동부경찰서와의 공조 수사 끝에 같은 날 오전 11시 10분쯤 빌라에서 A씨를 긴급 체포했다. 체포 당시 A씨는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으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흔적이 확인돼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A씨는 광주 소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최근 수년 간 소규모 사업을 운영하다가 큰 부채를 떠안게 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명확히 사업 실패나 채무 문제를 동기로 범행했는지는 아직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금융기록, 채무관계, 통신기록 등을 확보할 계획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A씨 가족은 평소 주변과 거의 교류가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가족 맞은편에 사는 한 주민은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했다”고 했고, 또 다른 주민은 “엘리베이터에서 딸들을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지만, 가족 전체와는 전혀 교류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평소 주말 부부로 지내며 광주에서 혼자 거주했고, 그곳에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비관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건 현장은 외견상 평온한 분위기였다. 경찰이 강제로 출입문을 개방한 흔적 외에 이렇다 할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우편함에도 밀린 고지서나 체납 명세서 등이 없었고, 외부에서 봐선 이곳이 일가족이 살해당한 장소라는 점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경찰은 A씨의 회복 상황을 지켜보며 범행 경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