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 건물에는 “우리가 옳다. 끝장 투쟁으로 직접 고용 쟁취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직영화 전환하라”고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인도에도 형형색색 텐트가 세워졌다. 민주노총 소속 공단 고객센터 노조가 설치한 것들이다. 로비에 들어가니 노조원 수십 명이 농성 중이었다. 맞은편엔 공단 김용익 이사장이 스티로폼 등을 깔아놓고 단식 농성 중이었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 실상 상징”
서울대 의대 출신인 김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공약 수립에도 관여했고, 문재인 대통령 측근으로 꼽힌다. 그런 그마저 노조를 상대로 단식 농성까지 벌이는 처지가 된 것이다.
노동계에선 그의 이날 단식을 놓고 현 정부 고용·노동 정책의 상징이었던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0)’의 실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같은 민주노총 소속인 고객센터 노조와 공단 노조가 서로 양보 없이 맞서고 있는 점이 그렇다. 기관장이 단식까지 하면서 어떻게든 풀어보려 하지만 이 단식이 실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가 지난해 노조 간 제대로 된 합의 없이 직접 고용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로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는 데다, 정규직 노조도 양보할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콜센터 노조는 자신들을 ‘비정규직’이라 주장하지만 이들은 실제로는 민간 전문 업체 소속 정규직이다. 상당수 공공기관과 민간 업체는 콜센터를 전문 업체에 위탁 운영하게 하고 있고, 건보공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이런 민간 위탁 사업도 정규직 전환 검토 대상에 포함시켰다. 노동계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여 정책으로 추진한 것이다. 다만 정부는 지난 2017년 7월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런 민간 위탁 사업을 직접 고용할지 여부를 각 기관별로 노사가 협의해 결정하게 했다. 실제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은 고객센터 직원들을 직접 고용했다. 건보공단은 정규직 노조가 반발하면서 꼬이고 있다.
◇정규직 전환 곳곳서 마찰
문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지난 2017년 5월 12일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추진 4년이 지난 지금 문제점이 많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출국장에서 승객들 몸과 소지품을 검사하는 보안검색원 1900명을 직접 고용하는 문제를 놓고 아직까지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공사와 정부는 용역 업체 소속이었던 이들이 공개 채용 시험을 거쳐야 직접 고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정성 시비 문제를 감안한 조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보안검색원이 시험에 떨어져 해고될 수도 있다는 점이 불거졌다. 실제 보안검색원에 앞서 직접 고용 절차를 진행한 소방대원 중 47명이 시험에서 탈락해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계에서도 “비정규직 제로가 무늬뿐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3월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된 19만9538명 중 25.8%(4만9709명)는 본사가 아닌 자회사 소속 정규직이 됐다. 본사 소속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무기계약직인 경우도 적지 않지만 정부는 정확한 통계를 집계하지 않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비정규직이던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6500명 중 5100명은 자회사, 1400명은 본사 소속으로 직접 고용했다. 요금 수납 업무는 이미 자회사로 모두 넘긴 상태였기 때문에 본사 소속 1400명은 기존 요금 수납 업무가 아닌 도로 청소 등으로 돌렸다. 이를 위해 도로공사는 ‘현장 지원직’이란 별도 직무까지 만들어야 했다.
이런 정책 여파로 공공 부문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다.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24조2000억원이었던 공공기관 인건비는 올해 32조4000억원으로 4년 만에 8조2000억원이 늘어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