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학과 교수 10명 중 6명이 민간 기업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5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노동이사제 도입에 관한 전문가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가 기업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는 근로자의 의견을 기업의 중요한 결정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 등이 있다. 노동계는 이를 찬성한다. 반면 경영진과 노동조합의 의견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점 등이 단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특히 민간 기업에 이 제도가 의무 도입되면 문제라는 게 경제계 주장이다. 이사회 갈등 국면이 지속될 경우 경영이 난항을 겪어 외국 투자금 포함 기업에 들어간 투자금 회수 현상이 일어나 기업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경영학 교수 68.5% “노조 측으로 힘의 쏠림 현상 심화할 것”
경총에 따르면 이번 조사 대상자는 전국 4년제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 200명이다. 이 중 61.5%는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인한 기업경쟁력 악화를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8.0%는 노동이사제가 ‘기업 경쟁력에 큰 악영향’, 33.5%는 ‘기업 경쟁력에 다소 악영향’을 줄 것이라 답했다. 반면 25.5%는 노동이사제 도입이 ‘기업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노동이사제가 우리나라 경제 시스템과 들어맞는지를 질문하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응답은 17.0%, ‘다소 들어맞지 않는다’는 응답은 40.0%로 나타났다. 반면 ‘들어맞는 편이다’ 18.0%, ‘매우 잘 들어맞는다’ 5.0% 등 응답자의 23.0%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제시스템과 노동이사제는 무관하다는 응답은 20.0%였다.
특히 응답자의 68.5%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노조 측으로의 힘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보다 노조 측으로 힘의 균형이 매우 크게 쏠릴 것’이라는 응답은 29.5%, ‘지금보다 다소 노조 측으로 힘의 균형이 쏠릴 것’이라는 응답은 39.0%였다. 반면 ‘노사관계 힘의 균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은 16.5%(다소 도움 14.0%, 크게 도움 2.5%)였고, ‘아무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15.0%였다.
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에 도입되면 방만 경영·도덕적 해이가 늘어날 것이라고 한 응답자는 44.0%, 방만 경영·도덕적 해이가 오히려 개선될 것이라고 한 응답자는 24.0%였다.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32.0%였다.
◇경제계 “민간 기업 노동이사제 의무 확대 우려”
경제계가 우려하는 것인 민간 기업으로 노동이사제가 확대되는 것이다.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가 전부 도입되면, 민간 기업에 대한 노동이사제 도입 압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에 경총이 실시한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90%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 통과 시 민간기업에도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정치적·사회적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답했다. 정치적·사회적 압력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응답은 39.0%,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는 응답은 51.0%였다. 민간 기업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라는 압력이 없을 것이라는 응답은 10.0%에 그쳤다.
현재 국회에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이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김주영·박주민 의원이 노동이사제 도입 관련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들은 노동이사제를 도입했지만,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은 아직 이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계류 중인 해당 법안을 정기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연일 주장하고 있다. 정기국회는 다음 달 9일 끝난다. 약 2주가 남았다. 이 후보는 지난 22일 한국노총 간담회에서 “경기도에서 저도 산하기관에 전부 노동이사를 뽑아 임명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다음날엔 YTN 인터뷰에서 “야당이 반대하더라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서 실제로 처리해 보여주자”고 했다. 민주당은 이 후보 중심으로 당직을 개편한 만큼, 해당 법안을 더 신속하게 처리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자 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에서 “오늘(25일) 국회 기획재정위 경제재정소위에서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입법절차 중단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대립적인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하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이 의무화될 경우 이사회가 노사 교섭과 갈등의 현장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부작용은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