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노조도 이제 더 이상 약자가 아니고, 책임 있는 노동 운동을 해야 한다”며“새 정부는 불법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과거 노사관계에서는 불법 행위가 관행적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엄정 대응하지 않으면서 불법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새 정부는 불법 행위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이정식(61)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8일 서울지방고용청 집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거듭 강조한 말이다. 그는 “대우조선 사태처럼 불법을 지렛대 삼아 협상하는 관행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소속 노동 운동가 출신 장관이지만 달라진 노사 지형과 국민 여론에 대해 노동계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날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47일째. 고용부 등 5개 부처 장관이 불법 행위 중단과 조속한 협상 타결을 촉구하는 공동 담화문을 발표한 날이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이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청노조의 독(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 점거는 불법 아닌가.

“이미 불법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위법 행위로 요구를 관철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다. 정부 담화문도 이런 사태가 계속되면 정부가 인내할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9일 경남 거제 거제·토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점거 농성 중인 대우조선해양 1도크를 찾아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스1

-현 정부가 법과 원칙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

“노사가 협상하고 합의를 하는 것은 새로운 약속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가 약속을 만들기 위한 협상과 합의를 요구하면서 공동체의 기본 약속인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노조가 정부에 사용자의 부당 노동 행위나 임금 체불을 잡으라고 하고 기업에는 단체협약을 지키라고 하면서 ‘나는 불법을 해도 된다’ 이러면 안 된다. 정부도 노사,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불법 행위에 대해선 엄정하고 일관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안 봐주면 국민들이 법이 공정하다고 보겠나.”

-’오죽 힘들었으면 저러겠나’라는 의견도 많다.

“조선 산업에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은 맞고, 여기에 대한 사회적 고민도 해야 한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해결하든 정부가 정책으로 산업 생태계를 바꾸든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우리가 죽겠다’며 한 방에 해결하려 하면 안 된다. 답답하다고, 아프다고 마구 이렇게 하면 정부가 뭘 어떻게 하기가 어렵다. 법을 지켜야 한다. 이번에 빨리 사태를 풀고 구조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라는 뜻인가.

“산업 구조가 크게 변하고 있고 조선업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을 계기로 조선업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도 드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불법 농성을 하는) 이 상태로는 여기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할 수 없다. 하청노조가 불법 농성을 풀면 취약 근로자의 처우 개선 등에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할 예정이다. 상급 노조는 사회적 대화 등을 통해 의견을 내고, 요구를 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쌍용차를 봐라. 후유증이 얼마나 큰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9일 오후 경남 사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조의 농성 현장을 방문한 뒤 대우조선해양 원·하청 지회 노조원들과 면담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쌍용차 노조는 2009년 사측의 구조조정에 반발해 77일간 평택 공장에서 농성파업을 벌였다. 경찰은 결국 물리력을 동원해 진압했고, 이후 해고 노동자가 줄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회사 역시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리는 등 경영난을 겪었다. 이 장관의 발언은 이번 대우조선해양 파업이 이런 극단적인 사태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장관은 1985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한국노총에 들어가 30여 년간 노동운동을 했다. 한국노총에서 정책연구위원·기획조정국장·투쟁상황실장 등을 거쳤고, IMF(국제통화기금) 경제 위기가 닥친 1998년의 노사정 대타협과 2003년 주 5일제 도입 때 한국노총의 협상 전략을 수립했다. 2017~2020년 고용부 산하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내가 사회적으로 혜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고, 계속 사회운동을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한국노총에 들어갔다”는 게 노동운동 투신의 변(辯)이다.

‘노총 출신 장관이라 노동계 위주 정책을 펴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그는 “과거에는 노동계 입장을 대변했지만, 지금은 국민 전체 입장에서 현안들을 균형 있고 공정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노동 시장 개혁의 목표는 무엇인가.

“노동 시장 개혁은 52시간제와 임금 등이 부각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노사와 공동체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과 관행이 뿌리내리고 문화로 정착되는 것이 핵심이다. 새 정부는 불법에 대해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노조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노조도 이제 사회적으로 부여된 권한과 역할에 맞는 책임을 지는 노동운동을 해야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현재의 주 52시간제를 월평균 52시간제로 바꾸는 방침이 논란이 됐다.

“오해가 많다.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적, 세계적 흐름이고 정부도 이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다만 현재 제도가 너무 경직적, 획일적이라 최근의 노동 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개선해 52시간 틀 내에서 근로시간을 계속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일주일’ 단위로 연장근로를 규제하는 곳은 선진국 중에선 찾기 어렵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다는 의미도 있다.”

-최저임금 지역별·업종별 차등 문제는 어떻게 보나.

“지역별 적용은 지역감정과 전국이 1일 생활권인 현실을 감안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논의를 위한 기초 자료를 달라고 했으니, 자료를 만들어 줄 계획이다. 업종을 구분하는 것이 실익이 있는지를 보려면 제대로 된 데이터를 가지고 얘기해야 하지 않겠나.”

-중대재해처벌법이 모호하고, 경영자에 대한 지나친 처벌이며, 정부가 왜 법 개정을 안 하냐는 비판이 있다.

“법 개정 논의를 위한 여건이 아직 안 된 것 같다. 법을 바꾸려면 많은 논의가 필요한데 법이 시행된 지가 얼마 안 돼 아직 사례가 너무 없고, 법원 판결도 나오지 않았다. 사례도 좀 더 모여야 하고 전문가 논의도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께서도 업무보고 때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반드시 챙겨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