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5일 발표한 ‘고용 형태 공시 결과’에는 기업들이 본사 소속 정규직 채용은 꺼리고 하청·파견·용역이나 기간제, 단시간 근로자를 선호하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노동 유연화 조치 없이 소득 주도 성장 등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시 결과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 중 하청·파견·용역 등을 뜻하는 ‘소속 외 근로자’ 비율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다가 올해 3월 17.9%로 급증했다. 경기가 침체됐을 때 기업들이 이런 형태의 근로자를 먼저 줄였고,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자 정규직 대신 하청·파견 등을 다시 늘렸다는 뜻이다.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기간제·단시간 근로자 비율도 각각 20.1%, 5.6%로 늘어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 정부가 노동자에 대한 보상을 높이고 고용 환경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거꾸로 나타난 셈이다.
한국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다. 기업들은 노동시장 경직성을 피하려 하청·파견 등을 활용하고, 정규직 채용은 최소화해 왔다. 경기가 나빠지면 정리하기 어려운 정규직은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부터 정리했다. 임금 구조도 원청 정규직보다 열악했던 비정규직이 점점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업종이 조선업이다. 조선업의 소속 외 근로자 비율 평균은 62%에 달한다. 특히 하청 노조 파업 사태를 겪은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지난 2015년 조선소에서 모두 5만283명의 근로자가 일했다. 이 중 원청 소속은 27%에 불과했고, 하청·파견 등이 73%에 달했다. 하지만 수주 절벽 여파로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7년 만에 3만명 가까이 줄었다. 조선소를 떠난 대부분(84%)은 하청·파견 근로자였다. 넘치는 건조 물량을 소화해야 할 때는 조선소가 하청 등을 대거 활용했는데, 일감이 끊기자 하청부터 떨어져 나간 것이다. 대우조선해양과 함께 조선업 빅3로 불리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하청·파견 근로자 비율이 각각 62.4%, 68%에 달하기도 했다.
조선업뿐만 아니다. 건설업의 소속 외 근로자 비율은 47.3%, 철강·금속업은 32.6%에 달했다. 이런 산업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특성이 있는데, 기업들은 호황기에도 하청 등 비정규직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고용 유연화를 꾀한 것이다. 하지만 불황 충격을 원청보다 하청 근로자가 떠안고 임금 격차는 더 커지는 등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기업의 고용구조는 기본적으로 경기에 영향을 받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 문제는 정책과 더 큰 관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전임 정부 시절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더 심화됐다고 지적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질적으로 다른 두 개로 노동시장이 쪼개져 있는 것을 뜻한다. 노동 전문가인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는 “(전임 정부 시절) 이중구조 문제를 그대로 놔둔 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등을 밀어붙이다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고 했다. 소속 외 근로자나 기간제·단시간 근로자가 늘었다는 것은 이런 이중구조가 심화됐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노동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개혁 과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현재의 노동법 체계는 70년 전 공장법 시대에 만들어져 오늘날의 양극화나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시장 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전병유 한신대 교수는 “이중구조 문제는 워낙 오래된 문제로 해답 찾기가 쉽지 않아 현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는 “현행 법·제도가 이중구조 개선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며 “원청 업체들이 혹시라도 직접 고용을 해야 할 우려가 있는 하청 근로자의 근로 여건 개선을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